일본 정부가 내년 4월부터 통화정책을 책임질 일본은행(BOJ) 후임 총재를 구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중앙은행 총재는 경제 전문가에게 최고의 직책이지만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긴축 정책 전환을 앞두고 누구도 총대를 메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의 임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후임으로 거론되는 후보 3명이 모두 고사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일본 금융권에서 오르내리는 주요 후보는 통화전략가인 아마미야 마사요시 BOJ 부총재, 구로다 총재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비판해온 야마구치 히로히데 전 부총재, 글로벌 시장에서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 나카소 히로시 전 부총재 등이다. 아마미야 부총재와 나카소 전 부총재는 구로다 총재의 통화완화 정책을 지지해왔다.
이들이 선뜻 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7년 넘게 이어진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나 긴축정책을 펴야 하는 차기 총재가 자칫 금융시장 혼란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폐기하고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글로벌 주식과 채권시장에 대혼란이 초래되고 시중은행의 건전성 악화에 따른 금융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시장은 구로다 총재가 지난해 말 10년 만기 국채금리 변동 허용 폭을 ±0.5%로 확대한 것을 사실상의 금리 인상으로 받아들이고 차기 총재가 부임하는 4월부터 BOJ의 본격적인 긴축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12월 물가 상승률(신선식품 제외)이 41년 만에 최고치인 4%(전년 대비)에 달한 것으로 확인되자 이런 전망은 한층 힘을 얻고 있다.
FT는 “구로다 총재는 이른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셈”이라며 “차기 총재는 일본의 금리 정상화를 이끄는 벅찬 도전을 떠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지타 아야코 JP모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BOJ는 올해 중순까지 10년 만기 국채금리의 상한선을 1%로 높이거나 YCC 정책을 폐기한 뒤 내년 중반 이후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과정에서 시장과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