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트렌스젠더 여성 A씨. 외모는 여느 여성과 다를 바 없지만 성전환수술과 법적인 성별 정정은 하지 않았다. 호르몬요법을 시행 중이던 A씨는 지난 2021년 10월 약물 알레르기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입원 수속을 밟던 중 주민등록상 남성이라 남성 병실에 입원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은 A씨. 병원 측과 실랑이를 벌이다 입원하지 못하자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병원 측은 인권위에 “트랜스젠더 환자 입원과 관련해 별도의 기준은 없으나 의료법상 입원실은 남녀를 구분해 운영하는 게 원칙이며, 남녀를 구분하는 기준은 법적 성별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A씨와 같은 해에 입원했던 2명의 트렌스젠더 환자 역시 본인 부담으로 1인실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트랜스젠더의 병실 입원과 관련한 별도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5조의 2(의료기관의 운영기준) 제2호에서 '입원실은 남녀별로 구분해 운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 인권위 권고에...복지부 “트렌스젠더 병실 입원 가이드라인 마련"
지난 26일 인권위는 차별시정위원회는 A씨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보고, 복지부 장관에게 "트랜스젠더의 병실 입원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의료기관이 입원 환자를 특정 기준에 따라 구분해 병실을 배정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법적 성별만을 기준으로 이분법적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건 평등 원칙에 반한다는 게 인권위의 판단이다.
인권위는 이번 진정이 제기된 병원의 행위가 복지부 등 관계기관의 규정 미비나 공백에서 발생했다고 봤다. 복지부 장관에게 트랜스젠더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고 의료 처우 배제 등 불이익을 예방하기 위해 입원 관련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도록 권고한 배경이다.
복지부 역시 이 같은 권고를 받아들여 대응 기준 마련에 나섰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인권위의 질의를 받고 내부 검토를 진행했다"며 "성소수자의 사회적 성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어 이달 초 대한병원협회를 통해 (트랜스젠더 환자의 입원 병실 배치와 관련) 탄력적으로 대응하도록 안내했다"고 말했다. 향후 내부에서 추가 논의를 거쳐 세분화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 제정? 일선 병원들 "실효성 떨어져"
하지만 일선 병원들은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법적으로 구분하는 성별 자체가 2가지인데, 이분법적 범주라고 평가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반응이다. 특히 다인실 병동 비중이 높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다른 환자들을 고려하더라도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트랜스젠더 환자가 법적 성별과 상반되는 병실 배치를 요구해 갈등을 빚는 사례 자체가 흔치는 않다"면서도 "병원 입장에선 환자 본인이 주장하는 성별이 아니라 서류상 등록된 성별 분류 기준을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간혹 트랜스젠더 환자가 입원하더라도 1인실 병실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복수의 다른 병원들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또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뿐더러 (트랜스젠더 환자) 본인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트랜스젠더 전용 병동을 따로 만들지 않고서야 달라지진 않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