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조의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양대 노총이 회계장부와 관련 서류를 보고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노동 개혁의 한 축인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앞으로 노정 갈등이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는 1일부터 15일까지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조 334곳을 대상으로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을 제대로 비치·보존하고 있는지 보고받는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말 고용부가 밝힌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대책의 후속 조치다. 고용부는 노조에 조합원 명부를 비롯해 규약, 임원의 성명 및 주소록, 회의록,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을 비치했는지, 회의록과 재정에 관한 장부·서류를 3년간 보존했는지를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해당 서류별 체크리스트와 증빙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하지만 고용부가 증빙 서류별로 표지(表紙)뿐 아니라 내지(內紙) 1장을 요구한 것에 양대 노총은 서류 보고 첫날부터 강력 반발했다. 고용부는 제출 서류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내지 제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양대 노총은 “체크리스트·표지 등은 낼 의향이 있지만 서류별로 내지까지 제출하라는 요구는 과도하다”며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334개의 보고 대상 노조(산발지부 미포함) 가운데 한국노총 산하는 173곳, 민주노총은 68곳이다. 이미 민주노총은 지난달 17일 긴급단위사업장대표대회를 열고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행정관청의 개입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고용부의 자료 제출 요구도 특별한 사유일 경우에만 응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양대 노총이 내지까지 제출하지 않을 경우 ‘보고 거부’로 판단하고 행정 제재에 나설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점검 결과서를 원활하게 제출할 수 있도록 돕겠다”면서도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노동계는 노조 회계 투명성 대책이 노조 자주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노조 회계는 회계 담당자인 회계감사원의 자격부터 노조 재정 공표 방법과 시기까지 대부분 노조 자율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반면 고용부는 현재 노조의 재정 투명성이 해외 노조 회계 제도나 시민단체가 요구받는 재정 투명성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에서 “고용부의 내지 요구는 관련 법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월권”이라며 “특정 노조도 아닌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노조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는 자주성 침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세종대로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결의 대회를 열고 5월 총파업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