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K조선, 글로벌 발주물량 37% 확보했는데…인력 1.4만명 부족

■조선업 외국인 고용요건 완화…정부 특단대책 왜 나왔나

1월에도 7조원 규모 수주…근로자수는 2014년의 반토막

외국인력 도입규모 확대 불구 실제 입국자는 한자릿수 그쳐

인력난에 조업감소·공정지체, 납기 차질 우려 갈수록 커져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 풍년이 올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에만 무려 7조 원에 달하는 수주 물량을 따냈다. 한국조선해양(009540)은 국내 조선업 사상 단일 규모로는 최대인 12척의 메탄올 추진 친환경 컨테이너선 계약을 체결했고 삼성중공업(010140)도 초대형 부유식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설비를 포함해 2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이 1월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하며 부진에 빠진 가운데서도 선박 수출액은 86% 증가하며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난 한 해 전 세계 발주량의 37%를 수주하며 ‘K조선’의 힘을 보여줬던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 호황이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대급 수주 실적에도 국내 조선소들의 표정은 어둡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 탓에 일감을 따내고도 제때 공정을 진행하지 못해 매출이 줄어들고 선주와의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조선 업종에 외국인 용접공의 2년 경력 조건을 삭제하는 내용의 특단의 조치를 내놓은 것은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를 그만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업의 매출은 공사 진행률에 비례한다. 실제 지난해부터 인력 부족으로 공정 지연에 따른 매출 감소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지난해 역대급 수주 계약을 따냈던 삼성중공업의 매출액(5조 9447억 원)이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조업 감소와 공정 지체의 영향이 있었다”며 “특히 사외 외주 업체들이 인력 수급에 애로가 있는 상황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일부 프로젝트의 생산 스케줄을 조정(Slow down)했다”고 설명했다.



조선 업종의 인력난은 만성적인 이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최근 조선 3사의 수주 실적이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면서 인력난 문제가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계약 물량을 제때 건조해야 실적에 반영할 수 있는데 생산 인력 자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현장에서는 △조선소 근무 기피 △지역 생산 인구 감소 △상대적 저임금 등의 영향으로 인력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조선사들이 임금 수준을 대폭 올렸음에도 조선 업종에는 좀처럼 인력 수급이 안 되고 있다.

조선해양인적자원개발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조선업 근로자 수는 9만 5000명 수준으로 2014년 말 근로자 수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지난해 3분기 기준 조선 부문 근로자 수가 1년 전보다 900명가량 감소했고 현대중공업(329180)은 약 300명 줄었다. 대우조선해양(042660)의 경우 70명가량 감소했다. 산업부는 올해 말까지 조선 업계의 생산 인력이 총 1만 4000여 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실적 감소 외에 납기일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생산 인력이 부족해 공정이 지연되고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페널티는 물론 선주와의 신뢰가 깨질 수 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수주 호황에도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K조선’의 위상이 하락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업계에서는 대규모 수주가 들어온 2년 전 물량이 올해 본격적으로 건조되기 시작하면 지금 당장 조선소에 생산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조선업 인력 수급의 심각한 문제를 깨닫고 발 빠르게 인력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내국인 인력을 유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의 조선업 인력 대책이 외국인 근로자 유인 정책에 맞춰진 이유다. 조선 업계의 한 인사 담당자는 “울산·거제·영암 등 배후 도시에 일할 사람 자체가 없다”며 “인력 풀 자체가 줄어들고 있어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조치도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외국인 근로자 입국 절차를 단축시키고 기업별 외국인력 도입 허용 비율도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이달부터는 E-7 비자 근로자의 2년 경력 조건도 폐지한다. 산업부는 조선협회의 고용 추천을 받은 1621명의 인력 중 비자가 발급된 412건을 제외한 나머지 1000여 건에 대해서도 비자 발급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소 다르다. 실제 조선협회가 지난해 7월 말부터 17차례 걸쳐 해외 현지에서 진행한 기능 인력 기량 검증을 통과한 3500여 명의 외국인 중 실제 입국자 수는 3% 수준인 90여 명이다. 행정 절차 속도를 개선한다고 하지만 현지에서는 능력이 안 되는 외국인 근로자도 많은 상황이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보통 8~9명씩 짝지어 임금을 더 주고 편한 근무지를 옮겨 다니는 일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며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유치 정책을 반기면서도 현장 관리 감독 문제를 동시에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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