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찰 풍선의 미국 영토 진입이 한반도 정세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미가 한목소리로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려던 차에 미중 관계가 더 싸늘해지면서 한국 정부의 역할도 좁아졌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올해 역시 미중 간 패권 전쟁으로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에 유의미한 돌파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협력 분야별 사안을 나눠 미중 틈바구니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한미 외교장관회담은 당초 45분간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정찰 풍선 여파로 1시간 10분간 진행됐다.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두 사람은 정찰 풍선 문제를 상당 부분 할애해 거론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 계획이 연기되면서 미중 간에 북핵 문제를 협의할 기회도 결국 미뤄지게 됐다. 다만 한미는 회견을 통해 중국에 대해 대북 제재의 완전한 이행과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 등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박 장관은 “우리는 중국이 북한의 행동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명한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이를 행사할 책임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며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도 “중국과 열린 대화 채널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관여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블링컨 장관이 방중 계획을 연기한 것이며 취소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군사안보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문제로 볼지, 하나의 기 싸움으로 삼을지는 향후 미국 국무부 행보를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미중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추후) 블링컨의 방중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미중 갈등이 군사안보 분야와 미래 먹거리 분야인 첨단산업에 국한돼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 현안별 분리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동중 고려대 교수는 “정치적 레토릭과는 별개로 미중 경제 협력은 이어지고 있다”며 “정찰 풍선도 군사안보 차원의 완급 조절이 이뤄지겠지만 다른 영역까지 미칠 영향은 한계가 있어 분야별 분리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한권 교수도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선택보다는 현안별로 두 국가와 협력 사안을 찾고 시기별 의견을 공유하면서 대응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미 외교장관은 ‘과학기술협력협정’을 개정·연장하는 의정서에 서명했다. 과학기술협력협정은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정보 교환과 인적 교류, 공동 연구 수행 등을 규정하는 협정이다. 이에 따라 한미 간 우주·퀀텀·인공지능(AI) 등 공동 협력 분야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