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대기업 대출은 늘린 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은 줄이고 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 위기가 심화되자 시중은행들이 상대적으로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대출부터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지난달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98조 1211억 원으로 지난해 12월(598조 2095억 원)보다 884억 원 줄었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더 감소해 지난해 12월 314조 838억 원에서 올 1월에는 313조 650억 원으로 1조 188억 원이나 줄었다. 반면 대기업 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늘어났다. 대기업 대출의 경우 105조 5174억 원에서 109조 4832억 원으로 3조 9658억 원이나 증가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자 상환 부담감이 커지자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자금 여력이 생길 때마다 대출을 갚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금리가 모두 오르다 보니 기업들도 여유 자금만 생기면 대출을 갚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금리는 최근 눈에 띄게 올랐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5대 은행에서 취급된 중소기업 보증서 담보대출 금리는 5.29~5.85%로 같은 해 9~11월 금리인 4.85~5.39%보다 하단이 0.44%포인트나 뛰었다. 이 기간 자영업자 보증서 담보대출금리도 4.52~4.94%에서 4.87~5.52%로 상승했으며 자영업자 대상 신용대출금리도 4.44~6.23%에서 5.61~6.75%로 상하단 금리가 모두 뛰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기업 대출이 크게 늘어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기존 대출 상환이 늘었다면 대기업 대출 역시 함께 줄었거나 늘었어도 증가 폭은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이 신용등급이 낮거나 부실 우려가 큰 중소기업 대출이나 자영업자 대출을 먼저 줄이는 방식으로 리스크 관리를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시중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2월 기준 가계 및 기업대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9월보다 모두 뛰었는데 대기업 대출 연체율 평균 상승 폭(0.01%포인트)은 중소기업(0.05%포인트)이나 자영업자 상승 폭(0.06%포인트)보다 낮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통상 1월은 설 연휴가 껴 있어 영업일이 적기 때문에 대출 잔액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면서도 “최근 중기나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소폭 오르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한국은행이 올해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 차주들의 상환 부담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대기업보다 상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기나 자영업자 대출을 우선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인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