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 등 독일차 3사가 요소수 분사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배출 가스 저감 기술(SCR)을 담합해 과징금 총 423억 원을 물게 됐다. 요소수 분사량을 줄이면 연비가 좋아지지만 배출 가스는 늘어나는 만큼 친환경차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이유에서다. 폭스바겐도 담합에 참여했지만 관련 매출액이 없어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일 경유 승용차 제조사인 벤츠·BMW·아우디·폭스바겐이 배출 가스 저감 기술을 개발하면서 요소수 분사량을 줄이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행위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423억 원을 부과한다고 9일 밝혔다. 벤츠에 207억 원, BMW에 157억 원, 아우디에 60억 원의 과징금이 각각 매겨졌다.
이는 공정위가 ‘반(反)환경 담합’을 인정한 첫 사례다.
4사는 2014년 시행된 유럽연합(EU)의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요소수를 활용한 배출 가스 저감 기술을 개발했다. 요소수를 많이 쓰면 질소산화물(NOx) 배출이 줄지만, 요소수 탱크가 커지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무거워지는 탓에 연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가 수시로 요소수를 보충해야 하는 등 번거롭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이에 4사는 NOx를 과다 배출하더라도 요소수 분사량을 줄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4사는 200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소프트웨어 기능회의’ 등을 열고 요소수 분사 방식과 소프트웨어 작동 조건 등에 합의했다. 그 결과 NOx 저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수 분사 전략을 연구·개발할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위는 이때 친환경차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삼았다. 신동열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NOx를 많이 배출하지만 연비가 좋은 차, 비싸고 연비는 안 좋지만 NOx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차를 모두 자유롭게 출시해 경쟁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와 같은 합의로 배출 가스 저감 기술 개발 경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연구개발(R&D) 관련 사업자들의 행위를 담합으로 제재한 최초 사례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EU와 튀르키예가 이들 회사의 친환경 기술 관련 담합을 제재한 바 있다. 다만 구체적인 법 위반 행위에 대한 EU와 공정위의 판단이 일치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