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069620)이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미국 제품명 주보)’로 연간 2000억 원 가량을 벌어들이는 미국 시장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질 전망이다. 메디톡스(086900)와 보툴리눔 균주를 두고 벌인 민사 1심 소송 때문인데, 재판부가 400억 원의 손해 배상과 함께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제품 즉 나보타의 생산을 금지시키면서다. 대웅제약 측은 재판 결과가 ‘오판’이라며 즉각 집행정지 및 항소에 나선다고 밝혔으나, 집행정지가 인용되지 않을 경우 나보타의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미국 시장에서 판매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메디톡스 손 들어준 재판부…"나보타 판매 및 제조 금지하고 보툴리눔 균주 돌려줘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1민사부(권오석 부장판사)는 10일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는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해 개발됐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나보타를 포함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균주 제제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으며 균주를 메디톡스에 인도하고 이미 생산된 제품에 대해선 폐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대웅제약은 메디톡스에 400억 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문제는 재판부가 보툴리눔 균주 제제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다는 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조와 판매가 금지된 상황에서 기존 재고 물량이 충분치 않다면 곧 미국 판매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가처분 소송이 인용되지 않는다면 2심 결과가 나올때까지 미국 수출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보타의 매출액은 지난해 북미 기준 184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그 전년 대비 49% 증가한 수치로 지난해 4분기에만 54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만 대웅제약 관계자는 “제조 금지 등에 대한 집행 정지 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국 수출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악연…"직원 이직하며 균주 훔쳐"
두 회사 간 악연은 7년 전인 2016년부터 시작된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도용했다고 2016년 주장했다. 일부 직원이 메디톡스에서 대웅제약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대웅제약은 경기 용인시 토양에서 자체 발견한 균주로 나보타를 만들었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갈등은 소송전으로 번졌다. 의혹이 제기된 다음해인 2017년 국내에서 민형사 소송을 냈으며 미국에서도 대웅제약과도 법정 다툼을 이어갔다. 검찰 측은 메디톡스가 산업기술유출방지법 등 위반 혐의로 대웅제약을 고발한 형사 소송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결정했다.
형사 소송에서 검찰은 대웅제약의 손을 들어줬지만 미국 소송에선 메디톡스가 사실상 승리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CT)는 양 측 증거를 살펴본 뒤 2020년 12월 대웅제약 나보타의 미국 수입을 21개월 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대웅제약은 즉각 항소를 했으나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의 나보타 판매를 담당하는 미국 파트너사 에볼루스와 합의하며 소송은 종결됐다.
형사 소송에선 대웅제약이, 미국 소송에선 메디톡스가 승리한 만큼 손해배상금 금액이 501억 원 규모인 민사 소송 결과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민사 1심에선 메디톡스가 ICT 소송에서 승소했을 때 제출한 증거도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민사 1심 과정에서 당시 미국에서 사용됐던 증거들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6년을 끌어온 소송전에 규제 당국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규제 당국 관계자는 “보툴리눔 균주를 도용한 것이 사실일 경우 품목 허가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다”며 “다만 재판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항소할 가능성이 커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가도 희비 엇갈려
두 회사의 주가도 희비가 갈렸다. 10일 오전 11시께 메디톡스의 주가는 그 전날 종가 대비 4700원(3.52%) 하락한 12만 8900원에, 대웅제약의 주가는 전날 종가 대비 3400원(2.21%) 상승한 15만 74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판결 이후 종가 기준으로 메디톡스의 주가는 4만 원(29.94%) 상승한 17만 3600원으로 상한가를 기록했고, 대웅제약의 주가는 2만 9800원(19.35%) 떨어진 12만 42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