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자율 규제' 기대했는데 또 칼날…온플법에도 영향 미칠 듯

■카카오T 과징금 폭탄…플랫폼 규제 확산 신호탄되나

공정위, 배차방식 바꿔 '카카오T 영향력 확대' 판단

사측 "AI 로직 통한 소비자 편익 증진은 고려 안돼"

혁신 급한데 규제로 찬물 우려…플랫폼업계 초긴장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카카오모빌리티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한 건을 심의하는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카카오모빌리티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한 건을 심의하는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14일 ‘자사 가맹택시 콜 몰아주기’ 혐의를 받는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해 시정 명령과 257억 원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린 것은 불공정한 수락률 산정 방식을 통해 가맹택시와 비가맹택시를 차별하고 시장을 교란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택시가맹 서비스의 시장에서 카카오모빌리티가 운영하는 ‘카카오T’의 점유율이 크게 증가하며 지배력이 강화됐다. 하지만 공정위 판단에 대해 카카오모빌리티는 “일부의 편향된 의견만을 반영했다”며 크게 반발했고 온라인 플랫폼 업계는 정부 규제로 신산업 혁신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공정위 “카카오, 불공정한 수락률 산정으로 비가맹택시 차별”=이번 사건의 핵심은 불공정한 수락률 산정 방식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수락률이 높은 택시가 더 많은 배차를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수락률 산정이 비가맹택시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맹택시 기사는 ‘콜멈춤’을 눌렀을 때만 콜카드를 거절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비가맹기사는 ‘수락’ 버튼을 누른 콜카드를 제외한 전체 콜카드를 거절한 것으로 간주된다. 비가맹기사에 주로 적용되는 배차 방식에서 1명의 기사가 수락할 때까지 최대 35초 동안 80개의 콜카드가 발송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1개 카드를 수락하더라도 79개의 콜카드를 거절한 것으로 취급되는 셈이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이처럼 수락률을 활용해 은밀히 배차 방식을 변경한 것은 기존에 시행하던 가맹기사 우선 배차 관련 의혹이 택시 기사 및 언론 등을 통해 제기돼 공정위에 적발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2019년 11월 카카오모빌리티 직원들은 “가맹기사에게 우선 배차하는 것이 알려지면 공정위에 걸린다” “배차 로직 담당 임원이 걱정하던 부분”이라는 등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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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영향력 확대로 택시 호출 시장이 요금 인상 등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카카오T’ 앱 호출만 수행하는 가맹택시 수가 늘어나면서 카카오T 앱의 승객과 기사 수가 늘어나고 일반호출 시장에서의 지배력도 유지·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수락률을 공정하게 산정하도록 하는 시정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의결서를 받은 날부터 60일 내 ‘카카오T’ 앱 일반호출 배차 알고리즘에서 차별적 요소를 제거한 이행 상황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유성욱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수락률 기반 배차, 목적지 미표시 등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고 그런 부분이 ‘콜 골라 잡기’ 해소에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며 “수락률을 편향되게 산정해 비가맹기사를 차별하는 것이 문제인 만큼 콜 골라 잡기 해소와 배차의 공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도록 시정 명령을 설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제공=카카오모빌리티사진제공=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모빌리티 “일부의 편향된 의견만이 반영된 결과” 반발=카카오모빌리티는 공정위 제재 결정에 대해 반발하며 행정소송 등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회사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공정위 심의 과정에서 인공지능(AI) 배차 로직이 승객의 귀가를 도와 소비자 편익을 증진한 효과가 확인됐음에도 결과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택시 기사 간 기계적 평등 배차 여부만 중요시했고 성실히 콜을 수행한 기사들의 노력도 외면한 결정이며 승차 거부 완화 등 효과가 데이터로 증명했는데 반영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플랫폼 규제에 무게를 뒀던 것과 달리 ‘자율 규제’를 내건 윤석열 정부에 기대감을 가졌던 온라인 플랫폼 업계는 이번 제재로 소비자 편익을 증진시키는 신산업 분야의 혁신 시도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콜을 거부하더라도 인센티브로 이를 조정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며 “공정위는 공정거래 질서를 보호해야 하지만 소비자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 이익이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면서 “독과점을 막는다는 이유로 이뤄지는 행정 조치로 사업이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수장이 바뀐 공정위가 처음으로 플랫폼 대상 규제 조치를 결정하면서 관련 산업에 대한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조만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논의될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온플법)’ 제정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19일부터 열릴 예정인 정무위는 여야 간사 합의를 통해 온플법을 법안소위에 상정할지 여부를 확정한다. 한 정무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이변이 없다면 사안의 중대성을 볼 때 온플법 안건은 소위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진 기자·세종=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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