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전문의 칼럼] 소아청소년 치료 막는 '연령 금기' 약물 조항

■한정우 연세암병원 소아혈액종양과 교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현장에서 의약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 사항을 정비해 ‘의약품 적정사용’(DUR) 정보를 제공한다. 특정 연령에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성분은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금기 약물로 지정한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가 약물이 꼭 필요한 어린이 환자들의 치료마저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아청소년과에서 ‘허가 외 처방’(오프라벨)은 불가피하다. 2019년 미국소아청소년과학회 발표에 따르면 외래 방문 1회 당 허가 외 처방이 1건 이상 발생하는 비율은 18.5%로 집계됐다. 신생아나 중증 질환, 만성질환 환자의 경우 더욱 흔하다.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사항과 완전히 들어맞지 않아 유사한 질환 및 증상에 처방하는 ‘허가 외 처방 가능성이 높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무려 90.6%에 달했다. 이 중 74.6%는 적응증 외 질환, 17.6%는 연령 금기(중복 포함)에 해당한다.



이러한 현실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은 소아청소년 대상의 약물 임상시험이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 등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데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높고 금전적 이득이 적어 임상시험이 진행되기 어렵다. 미국은 소아 환자들을 위한 신약개발 활성화 차원에서 ‘소아의약품법’(BPCA·The Best Pharmaceuticals for Children Act)과 ‘소아연구형평법’(PREA·Pediatric Research Equity Act) 등을 제정했다. 물론 여전히 상황은 녹록치 않다. 미국소아청소년과학회가 2014년 허가 외 처방 관련 정책성명서를 냈던 데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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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 외 처방은 부적절하거나 불법적, 실험적 사용이 아니라 현재 가용 자료를 분석해 유익성과 안전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환자(보호자)와 상의를 통해 사전 동의를 구하고 절대 금기가 아닌 상대 금기에 한해 라벨에 없는 적응증과 연령에 대해 임상 상황에 맞게 사용한다는 전제다.

그런데 국내 현실은 더욱 경직돼 있다. 소아청소년의 경우 법적으로 허가 외 처방 자체가 불가한 데다 ‘소아에서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문구는 마치 절대적 연령 금기로 사용을 막는 강제 조항으로 인식되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예외적으로 심평원 사전승인제도가 존재하지만 사전에 허가 외 처방을 승인 받았더라도 약물 사용 용량, 용법의 사소한 차이가 발생할 때마다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 비보험으로 결정나다 보니 암이나 희귀질환을 앓는 환아와 부모들은 경제적 문제로 실질적 치료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일찌감치 신세포암 및 악성 흑색종 성인 환자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표적항암제와 면역관문 억제제 역시 소아청소년에서는 원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신약 뿐 아니라 수십 년 간 처방 경험이 쌓이며 안전성을 인정받은 약제 사용도 불법이다. 마약성 진통제 역시 연령 금기의 예외가 아니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소아청소년 암환자들조차 처방 가능한 약제는 몰핀 주사제 뿐, 지속형 경구용 마약 진통제나 패취제는 처방할 수 없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50년 넘게 소아청소년에게 쓰여온 항암제 액티노마이신-D는 약가가 저렴해 국내 생산이 수년간 중단되는 소동을 겪었다. 그마저도 1세 이상에서만 허용되는 탓에 1세 미만의 암환자에게는 사용이 불가하다. 미국에선 허용되지만 국내 처방이 막혀있는 약물도 많다. 1997년 FDA 허가를 받아 림프종의 기본 치료제로 쓰이는 리툭시맙이 대표적이다. 미국 소아청소년암 임상시험 기관 COG(Children’s Oncology Group)은 10여 년에 걸친 임상시험을 통해 악성 림프종 소아청소년 환자의 생존율 향상을 증명했다. 소아청소년 악성림프종은 기존 치료 성적이 뛰어나다 보니 추가적인 생존율 향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 리툭시맙은 불가능에 가까운 생존률 개선 효과를 입증해 보였다. 하지만 정작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성인의 3상 임상에 준하는 임상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항암치료 시 구토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2003년 FDA 허가를 받았던 '이멘드'도 소아 사용금기 약물이다. 미국에서는 2015년 소아 적응증을 획득했으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18세 이하에서 투여할 길이 막혀 있다. 소아청소년은 15세가 넘는 경우 체중이 성인에 가까워 지는 데도 사용이 불법이다.

연령 금기 약물을 처방할 수 밖에 없는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을 싸잡아 무분별한 약물 처방이라고 비판하는 상황은 더욱 우려스럽다. 소아청소년과의 의료적 판단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행태는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 고사 상태와도 무관하지 않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본질은 소아청소년 환자에 대한 약물의 위험성과 이익을 평가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있다. 이같은 판단을 위해 훈련된 만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게만은 상대연령·적응증 금기 약물을 치료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인정해줘야 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진료 전문성이 보장돼야만 아픈 어린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한정우 연세암병원 소아혈액종양과 교수. 사진 제공=연세의료원한정우 연세암병원 소아혈액종양과 교수. 사진 제공=연세의료원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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