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고금리에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며 정부가 대책 마련을 촉구한 데 따라 금융 당국이 전 금융권의 성과급 체계 점검에 나서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논란을 일으켰던 증권사의 성과급까지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증권사의 부동산 PF 분야와 관련해 성과 보상 체계의 적정성 등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 점검을 통해 부동산 익스포저가 많은 증권사들의 부동산 시장 상황 및 리스크 등을 충분히 검토한 후 성과 보수를 합리적으로 산정·지급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증권사의 부동산 PF 부실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대규모 지원금을 투입한 마당에 증권사 임직원이 부적절한 성과급을 챙긴 게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이 은행권에서 불거진 돈 잔치 논란을 사실상 전 금융권으로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 금리 상승기 속 가계·기업이 고금리에 허덕이는 반면 은행권이 이자 장사로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 고액의 퇴직금, 성과급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금융 당국은 은행의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 체계를 들여다봄과 함께 증권사와 보험사, 카드사의 성과급 체계를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일부 보험사와 카드사는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근거로 연봉의 30~50%를 성과급으로 책정했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 당국에서 임원 성과 체계 현황을 제출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이번 점검을 통해 금융권의 임원 성과급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손질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금융사의 일반 직원 성과급까지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임원 성과급 체계를 통해 회사 전반에 파급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단기 성과를 중심으로 성과급 지표가 구성된 건 아닌지,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성과급 일부를 이연 지급하는 제도가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전해졌다. 성과급 이연 지급제는 금융회사 임원 등이 단기 실적 추구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성과급의 40% 이상을 3년 이상 나눠서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제도가 적용되는 성과급 규모나 기간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수 있다. 금융사 임원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는 ‘클로백(claw back)’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도 손꼽힌다. 현재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에는 ‘회사에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이연 지급 예정인 성과보수에 실현된 손실 규모를 반영해 재산정된다’는 조항이 있지만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거의 없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시행 중인 ‘세이 온 페이(say on pay) 제도’ 등도 참고될 것으로 보인다. 상장사가 최소 3년에 한 번 경영진 급여에 대해 주주총회 심의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권에서는 이같은 금융 당국의 행보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민간 기업의 경영 판단 및 의사결정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한다며 볼멘소리도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성과급 퇴직금 문제는 노사 합의에 따라 이뤄지고 있고 대규모 신규 채용을 하기 위해서는 희망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도 고려돼야 한다”며 “무조건 은행 때리기 식으로 논란이 진행되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