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발한 최대 규모의 열전(hot war)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신(新)냉전 시대’로의 회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친러시아로 대변되는 반(反)서방,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세력의 지정학적 대결 구도가 더욱 선명하게 됐다.
미국은 유럽연합(EU)과 함께 대(對)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주도하면서 막강한 연대를 과시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역할이 축소됐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전선을 확장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와 중국·북한·이란이 관계 재정립에 나서며 더욱 밀착하고 있다.
미국과 EU는 대러시아 동맹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국방 연락그룹(UDCG)’을 출범하는 등 군사 지원을 주도했고, 나토와 EU는 지난달 5년 만에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에서 양측은 “나토는 동맹을 위한 집단방위의 토대이자 유럽·대서양 안보에 필수”라며 “나토와 EU는 국제 평화 및 안보를 지원하는 데 있어 상호 보완적이며 일관적이고 강화된 역할을 한다”고 명시했다. 자체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EU로서는 부족한 방위력을 메우기 위해서는 나토의 우산 아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더 명확히 한 셈이다.
나토는 가치 연대를 앞세워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접점도 넓히고 있다. 지난해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2022년 전략개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도전’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만약 블라디미르 푸틴이 전쟁에서 이기면 당연하게도 중국이 아시아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이 때문에 나토가 일본·한국·호주·뉴질랜드 등 아시아 역내 동맹들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립과 갈등이 일상이 되며 군비 경쟁은 가속화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패전 이후 70여 년간 국가안보를 나토라는 집단안전보장체제에 의존해온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하고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부 장관은 “독일의 규모, 지리적 위치, 경제력 등으로 인해 원하지 않아도 (유럽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이 올해 초 고심 끝에 주력전차인 레오파르트2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결정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이에 맞서 러시아와 중국은 전략적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연합군사훈련을 확대하는 등 협력을 강화해온 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해 2월 ‘무제한 협력(no-limits partnership)’ 관계를 대내외에 천명한 바 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합병을 규탄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당시에도 중국은 기권하는 등 서방 일변도 흐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전쟁 이후 북한과 러시아 간 밀월도 눈에 띈다.
북한은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으로 전례 없는 무력시위를 잇달아 벌였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듭된 반대로 안보리 규탄 성명조차 번번이 무산되기도 했다. 북한과 러시아 모두 미국과 서방의 포괄적 고강도 제재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향후에도 이를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와 밀착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의 정치·안보 지형도 변화시키고 있다. 군사적 비동맹주의 정책에 따라 70년 넘게 지킨 중립 노선을 포기한 스웨덴과 핀란드가 대표적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나토 가입을 신청했고 30개국 가운데 28개국이 가입 비준안을 가결했다. 튀르키예·헝가리 등 2개국의 최종 비준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두 나라는 이미 나토의 공식 회의에 직접 참석하면서 사실상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U는 이른바 ‘확장정책(Enlargement Policy)’을 통해 동유럽 개발도상국 등 인접국들을 반(反)러시아 전선에 합류시키는 데 적극적이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고,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와 EU 가입 협상을 개시하며 동쪽으로 외연 확대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