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이사람] "기술의 본질은 삶의 질 향상…일상 편의 돕는 서비스 로봇 만들것"

■'국내 첫 서비스 로봇 기업' 로보티즈 김병수 대표

父에게 받은 손망치…만드는 것에 흥미

수업비로 프라모델 책 몰래 사던 학생

전세계 로봇대회 누비며 日서 최초 우승

現 CTO 등 대회 인연 사업으로 이어져

준비없이 뛰어든 창업…경영위기 겪기도

'엔지니어 출신' 한계 벗으려 MBA 수료

기술, 궁극적 목적 아냐…삶이 중점 돼야

시장 무르익었다 판단, 자율주행로봇 속도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가 17일 서울 강서구 로보티즈 사옥에서 자사 자율주행 로봇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김병수 로보티즈 대표가 17일 서울 강서구 로보티즈 사옥에서 자사 자율주행 로봇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기술은 법률이나 의학처럼 사회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의 본질은 인간의 삶과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국내 최초의 서비스 로봇 기업인 로보티즈(108490)를 창업한 김병수 대표는 17일 서울 강서구 본사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엔지니어가 만들더라도 정작 엔지니어는 세상을 못 바꾼다고 생각한다”면서 “기술에 대한 이해와 생활에 관한 관심이 조화를 이뤘을 때 비로소 인간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품과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1999년 로보티즈를 창업할 당시만 해도 산업용 로봇을 생산하는 기업은 있었지만 서비스용 로봇을 개발하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올해로 창립 25년차를 맞은 로보티즈는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등 로봇의 핵심 부품 생산부터 자율주행 로봇 솔루션까지 관련 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가 로보티즈를 창업한 후 ‘엔지니어 출신 사장’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그에게는 ‘기술 논리에만 갇혀 사업성이나 시장성을 함께 저울질하지 못한다’는 말로 들렸다. 김 대표는 “투자 심사역들이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의 한계가 어떻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싫었다”고 돌이켰다. 그 시선이 싫었던 만큼 극복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면서 기술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사업 초기부터 이른바 ‘공돌이’의 한계에 자주 직면했다.

사업 초기 로보티즈는 다른 회사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기술을 개발해주고 로열티를 받는 사업 구조였다. 로보티즈의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된 로봇들은 뛰어난 완성도를 앞세워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김 대표는 회사의 빠른 성장을 위해 직접 자체 제품 생산에 도전했다. 그는 “로봇 기술을 개발해서 제공하면 로열티로 많아야 한 대당 몇 달러 정도 들어오는 식이었다”면서 “직접 생산을 하면 단번에 성장하겠다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기술에 대한 지식만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창업 1~2년만에 큰 빚을 졌다. 김 대표는 “은행은 햇볕 쨍쨍할 때 우산을 빌려주고 막상 비가 오면 걷어간다고들 하는데 창업 이듬해 재무제표를 가져가니 그런 일이 제게도 벌어졌다”면서 “아무리 해도 평생 빚을 갚을 수 없겠구나라고 체념했었다”고 술회했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가 17일 서울 강서구 로보티즈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 도중 발언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김병수 로보티즈 대표가 17일 서울 강서구 로보티즈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 도중 발언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평생 못 갚을 줄 알았던 빚도 조금씩 청산됐다. 로보티즈의 핵심 제품군인 다이내믹셀 액추에이터를 일본으로 수출하면서 재무 상황이 급격히 호전됐다. 김 대표가 보여준 엔지니어로서의 역량과 각종 대회 수상 경력 등이 서서히 빛을 발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그는 ‘엔지니어 DNA’를 지우고 균형 감각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인용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일본 도쿄대로 유학을 보내 박사 과정을 밟도록 하는 등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자신은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에 등록해 경영 지식·노하우를 습득했다.



사실 그의 창업은 경영 감각을 준비할 새도 없이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창업당했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다. 김 대표는 병역 특례로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의뢰한 기업들의 로봇 기술을 개발해주며 일종의 프리랜서처럼 일했다. 수입은 짭짤했다. 직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받던 연봉의 약 10배를 벌었다. 지금 물가로도 거액의 연봉을 받았지만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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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기술 개발을 맡겼던 한 기업의 대표가 내민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덜컥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김 대표에게 6000만 원짜리 용역을 발주하면서 2억 원을 더 얹어주며 개인 사업체를 법인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김 대표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제안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회사 밸류에이션을 20억 원 정도로 보고 10%인 2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말이었다”면서 “공대 출신 엔지니어로서 한계를 여실히 느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미소 지었다.

얼떨결에 창업의 길로 들어섰지만 로봇에 대한 김 대표의 애정은 어린 시절부터 무르익어왔다. 김 대표는 늘 재킷 라펠에 망치 모양의 브로치를 단다.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김 대표의 집 인근에는 각종 공사가 한창이었다. 요즘 편의점만큼이나 철물점이 흔하던 시절이다. 그는 “아버지가 흔하디 흔한 철물점에서 작은 망치를 사주셨는데 그때부터 못이며 나무조각들을 모아 무엇을 만드는 것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 시절 마음을 브로치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가 17일 서울 강서구 로보티즈 사옥에서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망치를 들어보이고 있다. 오승현 기자김병수 로보티즈 대표가 17일 서울 강서구 로보티즈 사옥에서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망치를 들어보이고 있다. 오승현 기자


만드는 것을 향한 흥미는 자연히 로봇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청소년기에는 자동차 프라모델 만들기를 즐겨했다. 당시 프라모델은 지금에 비해 훨씬 희귀했고 가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부친이 일본 출장을 가기만을 기다렸다. 부친은 출장 선물로 일본제 자동차 프라모델을 종종 사오셨다. 프라모델의 종주국 격인 일본과 한국의 기술 차이는 현재보다 훨씬 컸다. 그는 사무실에서 조악한 자동차 프라모델을 들어 보이며 “당시에 이런 것들을 갖고 놀면서 과학적 밑바탕이 궁금했고 더불어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호기심을 가졌다”고 회상했다. 최근에 나오는 미니카 제품들은 친절한 설명서만 잘 읽고 조립하면 되지만 당시 김 대표가 관심을 가졌던 프라모델은 전자 부품이 포함돼 있어 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프라모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전자제작집, 마이크로지능로봇, 전자장난감 제작 등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다. 당시 관련 서적이 한 권에 대략 2000원 안팎이었는데 학생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책은 읽고 싶은데 주머니는 얇았던 시절 그는 결국 보충수업비로 책값을 충당했다. 김 대표는 “보충수업비가 8000원쯤 됐는데 그 돈으로 기술 서적을 사서 읽었다”면서 “어머니는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른다”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기술 서적을 탐독하던 청년은 성인이 돼 어릴 적 가슴 한 편에 늘 선망의 나라로 남았던 일본 땅에 기어코 ‘로봇 깃발’을 꽂았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의 유명 로봇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다. 김 대표는 “제 기억으로 일본 사람들이 당시 크게 놀라워하는 기색은 없었다”며 “아마 한국인의 우승이 어쩌다 일어난 이벤트 정도라고 생각하고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되레 친절하게 대해줬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로봇 대회 우승은 비즈니스로도 이어졌다. 창업 초기 하 CTO가 자신도 일본 로봇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며 같이 일하고 싶다고 김 대표를 찾아왔다. 창업 직후 격무에 시달리던 김 대표는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기뻤다고 한다.

로봇 대회에 젊음을 걸었던 순간들은 김 대표 인생을 통틀어서도 가장 행복하고 치열했던 시기로 남아 있다. 일본과 프랑스 등 로봇 대회를 따라 여러 국가를 누볐다. 프랑스 파리를 가고도 에펠탑을 구경하지 못했다는 전언에는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김 대표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함께 로봇 축구 대회도 열려 파리에 갔는데 대회가 끝나고 다른 참가팀들과 미팅을 하느라 관광을 못했다”며 “주위 사람들이 에펠탑은 보고 와야 하지 않느냐고 타박하지만 제겐 로봇과 관련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게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하 CTO 외에도 김 대표와 함께 대회에서 적수로 만난 추억의 인물들이 최근 로보티즈로 속속 합류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당시 로봇 대회에서 상대로 만났던 여러 엔지니어가 각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도 지난해 영입 제안에 많이 응해줬다”면서 “다들 자신의 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어 이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뿌리치고 오는 걸 보면 그 당시의 기억이 매우 강렬했던 것 같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한때 경쟁했던 옛 동료들의 지원 속에 김 대표는 새롭게 벼린 경영 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험대에 오른다. 오랜 기간에 걸쳐 차근차근 준비해 온 자율주행 로봇 솔루션 사업을 올해부터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터틀봇’을 비롯한 로보티즈의 로봇 솔루션 판매 추이가 자율주행 로봇 솔루션 사업 추진의 중요한 가늠자가 됐다. 터틀봇은 로보티즈와 ‘오픈소스로보틱스파운데이션(OSRF)’이 공동 개발한 로봇 개발 플랫폼이다. 김 대표는 “일반인이 아닌 개발자들 사이에서만 터틀봇이 누적 2만 대가 팔리는 걸 보고 시장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면서 “자율주행 로봇 분야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올해부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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