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세계 각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비만을 '21세기 신종 감염병'으로 규정했다.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2050년에는 성인 남성의 60%, 성인 여성의 50%, 아이들의 25%가 비만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런데도 상당수 부모들이 소아 비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마른 것보다는 통통한 것이 더 좋다’ 거나 ‘어릴 때 살은 키로 간다’는 식의 표현에 익숙해진 탓이까. 우리나라는 아이들의 비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같은 표현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영양결핍이 많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 더 이상 적용 가능하지 않다.
소아청소년 비만이 중요한 이유는 이 시기에 비만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평생의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만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고혈압·당뇨·고지혈증·지방간염·심혈관질환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은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5배 이상 높다.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확률도 2배 이상 늘어난다. 최근에는 소위 '성인병'이라고 불리던 비만 합병증들이 성인이 되기 전 소아청소년 시기에 이미 발생하는 경우도 증가하는 추세다.
소아 비만은 아이의 키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살이 찐 아이들은 통상적으로 사춘기 이전까지 키가 더 빨리 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사춘기 이후에 성장이 느려지면서 최종 키가 원래 클 수 있는 키보다 더 작아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비만이 아이의 자신감이나 사회성 등에 미치는 정서적인 영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의학 논문 2편을 살펴보자. 2018년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는 소아 5만 1505명을 대상으로 만 1~6세 때 체중과 청소년 시기의 체중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살펴본 연구가 실렸다. 논문에 따르면 만 2세까지 과체중이었던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청소년기가 되기 전 정상 체중으로 돌아왔다. 그에 반해 만 3~4세 이후에 비만이었던 아이들의 경우 83%가 비만인 채로 청소년기를 맞았다. 만 3~6세 사이에 비만인 아이들 10명 중 8~9명은 청소년 시기까지도 비만일 것이란 의미다.
2017년 NEJM에 발표된 논문도 흥미롭다. 4만 1567명의 소아청소년과 성인을 분석한 결과 만 10세 이후에 비만인 경우 만 35세에 비만일 확률이 80~90%였다. 두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만 3세 이후에 비만인 경우 청소년기는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비만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쉽게 말하자면 어린 시기의 비만이 성인 시기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의미다.
소아 비만에 대해 문제의식이 낮은 문화가 형성된 이유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당시 영양부족 때문에 키가 잘 크기 못하는 사례를 많이 지켜봤던 경험들이 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상황과 아이들의 식습관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제 과거 문화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아이들의 비만은 가장 심각한 건강 문제 중 하나다. 비만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은 어릴 때부터 좋은 식습관과 운동을 통해 비만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세 살 비만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임상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된 내용이다. 많은 부모들이 ‘소아 비만=질병’이라는 생각을 갖길 바란다. 오늘날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영양제나 좋은 음식을 챙겨먹이는 것이 아니다. 좋은 식습관과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형성해 소아 비만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