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한 ‘전략 차종’이 현지 시장에서 ‘국민차’로 부상하고 있다. 전략 차종은 특정 국가와 대륙마다 다른 시장의 특성을 반영해 개발한 차를 뜻한다. 인도·남미·북미·유럽 등에 투입된 전략 차종은 현대차·기아의 판매 실적을 견인하는 동시에 ‘올해의 차’ 등 저명한 상을 휩쓸며 브랜드 영향력 강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인도 시장이 대표적이다. 26일 현대차에 따르면 인도 현지 맞춤형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크레타는 지난해 총 17만 162대가 팔리며 전체 현대차 인도 판매량(55만 2511대)의 30%를 책임졌다. 기아차의 소형 SUV인 ‘쏘넷’도 판매 호조를 보이면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인도에서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80만 대를 돌파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인도 시장을 철저히 분석해 전략 차종을 개발한 점이 현지 고객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현대차는 현지의 더운 날씨를 고려해 크레타의 뒷좌석에도 에어컨을 기본 사양으로 적용했고 비포장도로가 많은 도로 사정에 맞게 차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지상고(노면에서 차체 바닥까지의 높이)를 높였다. 경적을 자주 사용하는 현지 운전 습관을 반영해 클랙슨 소리를 높이는 세심함까지 더했다. 여기에 대가족이 많은 특성을 겨냥해 소형급이지만 실내 공간을 최대한 넓히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크레타는 2015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70만 대가 넘게 판매되며 인도 국민차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전략 차종은 현대차의 남미 시장 공략에도 기여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브라질 시장에서 18만 7809대를 판매하며 1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는데 전략 차종 HB20이 12만 950대 팔리며 현대차의 판매 호조를 이끌었다. HB20은 세금이 높은 탓에 저가형 소형차가 인기인 남미 시장을 위해 현대차가 40개월 넘는 시간을 들여 개발한 소형 SUV다. 특히 현대차는 사탕수수를 발효한 에탄올과 가솔린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혼합연료’ 차량이 남미 자동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점을 고려해 HB20에도 혼합연료 기능을 적용하는 등 현지화에 힘썼다.
선진 시장인 북미와 유럽에서도 현대차그룹의 전략 차종은 호평받고 있다. 기아는 큼직한 차체와 넉넉한 적재 공간을 선호하는 북미 소비자를 겨냥해 7인승 대형 SUV 텔루라이드를 2019년 선보였다. 텔루라이드는 2020년 ‘북미 올해의 차’를 거머쥐고 유력지 ‘US 뉴스&월드리포트’로부터 3년 연속 ‘최고의 3열 SUV’에 선정되는 등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기아가 유럽에 투입한 전략 차종 ‘씨드’도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씨드는 유럽 소비자가 선호하는 해치백 형태로 2006년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한 뒤 매년 10만 대 이상 판매됐다.
현대차그룹은 해외 제조사보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 늦은 점을 만회하기 위해 차종의 디자인과 상품성을 철저히 현지화하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해외 고객의 이동 경험을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해외 공장을 시찰할 때 “시장별 고객들의 성향과 특성을 철저히 분석해 자동차를 개발하고 판매해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밝힐 정도로 세심한 현지화 전략을 직접 주문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