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반도체 명가 재건" 드림팀 닻 올려…도요타 '전기차 퍼스트' 선언

■日 미래전략산업 육성

8대 대기업 공동 출자 라피더스

2나노 생산기지 홋카이도로 선정

48조 쏟아부어 첨단 칩경쟁 가세

닛산, 전동화 비중 98%로 확대

대학정원 풀어 디지털인재 육성도

고이케 야쓰요시(왼쪽 두 번째) 라피더스 사장과 다리오 길(〃 세 번째) IBM 수석부사장이 지난해 12월 13일 도쿄에서 차세대 반도체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교도연합뉴스고이케 야쓰요시(왼쪽 두 번째) 라피더스 사장과 다리오 길(〃 세 번째) IBM 수석부사장이 지난해 12월 13일 도쿄에서 차세대 반도체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잃어버린 30년’의 수렁에 빠진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반도체·전기자동차 등 미래 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명가(名家)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 보조금 지원과 TSMC 유치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것은 물론 도요타·닛산 등 자동차 기업들도 전기차 전환에 나서면서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도요타·소니 등 일본 8개 대기업이 공동 출자해 출범한 ‘반도체 드림팀’ 라피더스가 홋카이도를 신규 공장 부지로 선정하며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고이케 야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이날 스즈키 나오미치 홋카이도 지사와 만나 홋카이도 지토세를 신규 반도체 공장 건설지로 확정했다. 지난해 11월 반도체 왕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출범한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로부터 700억 엔(약 6800억 원)의 지원을 받았으며 기술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미국 IBM과도 제휴했다. 라피더스는 아직 세계에서 생산 기술이 확립되지 않은 2㎚(나노미터·10억 분의 1m) 첨단 반도체 양산에 5조 엔(약 48조 원)을 투자해 2020년대 후반부터 본격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1980년대까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 반도체가 사양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986년 미국과 일본이 맺은 ‘반도체협약’이다. 당시 일본 업체가 시장을 좌지우지하자 미국 정부는 일본의 보조금 등을 이유로 보복관세를 매겼다. 이를 견디지 못한 일본은 결국 미국과 반도체협약을 맺었고 미국 내 일본 반도체 점유율을 절반 이하로 유지하는 등의 조치가 10년 이상 이어졌다.




그랬던 일본이지만 다시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단 미국의 자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이 첨단 반도체 등을 개발해 결국 군사적으로 전용,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미국은 중국 반도체 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직 반도체 장비·소재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가진 일본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실정이다. 미국 IBM은 도요타·소니 등 일본 대기업이 설립한 라피더스와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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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선후(先後) 공정을 막론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범용 반도체 생산 설비 투자에 드는 비용의 최대 3분의 1을 보조해 주기로 했다. 여기에는 총 3686억 엔(약 3조 5000억 원)이 투입된다. 반도체 후공정 지원을 위해서는 레조나크 등 12사가 2년 전 공동 설립한 ‘조인트2’에 50억 엔(480억 원)을 투입했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하이브리드차에 집착해 전기차 전환에서 뒤처진 일본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생산 확대로 돌아서고 있다. 28일 아사히신문은 닛산자동차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전동화 차량의 2026년 판매 비중 목표를 75%에서 98%로 끌어올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14년 만에 새 최고경영자(CEO)를 맞은 도요타 역시 최근 ‘전기차 퍼스트’를 선언했다. 사토 고지 신임 CEO는 “전기차 우선 사고방식(EV-first mind-set)으로 사업 본연의 성격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관련 인재가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대학의 정원 규제를 해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내년부터 도쿄도 23구 소재 대학의 디지털 관련 학과의 정원 규제에 예외를 허용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2030년께 일본의 디지털 인력이 약 79만 명이나 모자랄 것으로 전망되자 내놓은 방책이다.

이는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 산업 전체가 쇠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 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위탁생산·설계 포함)에서 일본 기업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곳은 기옥시아로 15위에 그쳤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에 따르면 제약·전기장비 등 7개 첨단 분야에서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995년 25%에서 2018년 8%로 쪼그라들었다.

도쿄이과대학의 와카바야시 히데키 교수는 “정부의 충분한 지원이 있다면 일본은 2030년까지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반도체의 세계 매출 점유율은 1988년 50.3%에서 2019년 10%까지 주저앉은 상태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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