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회계감사 결과에 이의를 신청한 저를 노조위원장이 간부 직위에서 해임시켰습니다. 현재 노조를 떠났지만, (노조는) 민형사책임을 물어 해고시킨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2일 고용노동부가 회계 투명성 강화에 이어 노조의 불법 행위도 사실상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처벌에 나서는 초강수를 꺼냈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부조리를 더 이상 현행 법 체계로 규율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사용자(사측)의 잘못만 묻는 부당노동행위의 틀을 뒤바꾸는 시도여서 파장이 주목된다. 이미 노동계는 회계 투명성 강화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용부가 1월26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받은 불법 부당행위 301건은 노사의 ‘민낯’이다. 고용부는 주요 사례를 노동조합과 사용자으로 민원 유형을 구분했다. 우선 노조의 경우 노조 탈퇴 방해, 협박 및 폭행이 대표 민원으로 제시됐다. 상급단체 규약 탓에 지회 단위 조직 형태 변경을 못하는 사례는 최근 포스코, 금융감독원, 원주시청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협박을 통해 집회, 파업 등에 조합원을 강제로 동원시키거나 조합원을 폭행하는 사례도 있었다.
고용부가 추진 중인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대책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민원 중에는 5억원 상당의 조합비 횡령 의혹을 제기한 조합원이 제명 당한 경우가 있었다. 노조의 공금인 쟁의기금을 유용하거나 노조 임원이 금품 및 향응을 수수했다는 민원도 공개됐다. 회계자료를 절차대로 비치하거나 공개하지 않고 감사결과도 조합원에게 알리지 않는 사례도 확인됐다. 사용자의 불법 행위는 포괄임금 오남용, 부당노동행위, 직장 내 괴롭힘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포괄임금 오남용은 공짜노동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현장에서 만들어진 잘못된 관행으로 평가된다. 사측이 특정 노조 간부를 불법적으로 지원하거나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방해하는 일도 여전했다.
고용부는 이날 불합리한 노동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두 가지 방향의 대책을 내놨다. 눈에 띄는 대책은 사용자의 책임을 묻는 부당노동행위에서 새롭게 노조도 책임을 묻겠다는 방향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서 정한 부당노동행위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침해한 사용자의 행위만 처벌한다. 고용부는 처벌조항에 대해 노조가 다른 노조나 근로자의 조합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예로 들었다. 조직형태 변경을 제한하거나 다른 노조의 회의를 방해하는 행위도 해당된다. 특히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도 금지하기로 했다. 최근 건설현장에서 문제가 된 월례비 갈등이 예로 적시됐다. 고용부 판단대로라면 월례비가 적다는 이유로 작업을 거부한 현장에 투입된 대체기사의 정상조업을 방해해선 안 된다. 고용부는 일련의 불법 또는 부당행위 규율 위반 시 징역 또는 벌금 등 제재 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고용부는 예고한대로 이달 회계 투명성 강화, 불법행위 규율 등이 담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이달 내 노조 회계감사원 자격 및 선출을 규정하고 결산결과에 대한 공표 방법이 담긴 노조법 개정을 입법예고한다. 오는 3분기까지 노조 재정 상황을 쉽게 볼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할 방침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불합리한 노동 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고 “현재 노동법 체계는 쟁의행위에만 집중됐다”며 “폭력 등 노사관계 시스템에서 심각한 부분은 형법과 다른 법 체계에서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