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삼성전자(005930)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연다. 주요 기업들은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 교체 등 ‘이사회 혁신’을 최대 과제로 삼았다. 행동주의 펀드가 득세하고 소액주주의 목소리도 높아지자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는 기업들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서울경제가 2일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의 주주총회 공고를 분석한 결과 주총에서 새 인물을 이사회에 영입하는 곳이 80%에 달했다. 삼성전자와 네이버를 제외한 LG에너지솔루션(373220)·SK하이닉스(000660)·LG화학(051910) 등이 기존 사외이사 49명 중 13명을 신규 선임할 계획이다.
신규 선임될 사외이사 중에서는 해당 분야 권위자로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춘 대학 교수 출신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SK하이닉스는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에서 외부 전문가로 활동 중인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석좌교수를 사외이사에 추천했다. 정 교수는 국내 최고의 시스템반도체 설계 전문가여서 관련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우리금융지주(316140)는 투자 전문가들을 이사진에 포함시켜 지성배 전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과 윤수영 키움자산운용 대표가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됐다. 다만 사외이사진은 7명에서 6명으로 줄였다.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을 이사 후보로 올린 기업들도 눈에 띈다. 기아(000270)는 해충 소독 전문 기업 세스코의 오너인 전찬혁 회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이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한편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이라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역임한 박진규 고려대 기업산학연협력센터 특임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이사회 절반을 교체한 경우도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17일 열리는 주총에서 노균 부사장(EPCV 센터장)과 안도걸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책임연구위원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안 위원은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아울러 대주주 간 지분 경쟁이 불붙은 고려아연(010130)도 이사 11명 중 5명을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롯데렌탈(089860)은 사내이사 2명을 전면 교체해 세대교체에 나선다.
이사회 정원 확대도 이어졌다. 현대차는 이사회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정원을 11명에서 13명으로 늘리고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각각 1명씩 추가 선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내이사는 5명에서 6명으로, 사외이사는 6명에서 7명으로 늘어난다.
여성 사외이사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SKC(011790)는 채은미 전 페덱스코리아 사장을 사외이사로 올릴 예정인데 채 전 사장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면 SKC의 여성 사외이사 비중은 절반으로 높아진다. SK하이닉스가 여성 사외이사를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릴 계획이며 삼성화재(000810)는 김소영 전 대법관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화제를 모은다.
물갈이를 통한 이사회 혁신과 사외이사 확대는 행동주의 펀드의 입김이 거세지자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에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과 회계장부 열람 등을 요구하는 주주 서한을 보낸 후 주총 표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행동주의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SM엔터는 31일 열리는 주총에서도 이사 선임과 정관 변경 등에 대거 회사 측 개선안 및 주주 제안이 올라와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도 BYC(001460)에 부당 내부거래 근절을 위해 법률 전문가를 감사위원으로 추천하는 주주 제안서를 보냈으며 휴마시스(205470)·광주신세계(037710)·사조산업(007160)도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이사·감사 선임 및 해임과 관련된 주주제안 등이 주총 안건으로 채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