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동십자각] 노동 운동은 지금도 왕자병 환자인가

■양종곤 사회부 차장





2004~2005년 노동계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박승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수석연구원이 계간 ‘당대비평’에 실은 ‘한국 노동운동 종말인가 재생인가’라는 기고를 두고 뜨거운 실명 논쟁이 펼쳐졌다. 오랜 노동운동가가 노동운동을 ‘왕자병 환자’라고 직격탄을 날린 파장이었다. 당시 글은 정규직과 대기업 근로자 중심인 노동조합의 노동운동에 대한 자성이 담겼다.



박 연구원은 “노동운동은 폭력 운동을 멈추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파업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풀뿌리 노동운동으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민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노조의 강경 파업에 대해 “현재의 노동운동은 논쟁과 갈등 과정에서 국민적 명분을 얻지 못한다”며 노동운동이 사회적 약자로 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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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병 환자’ 논쟁 이후 19년이 지났다. 이 화두가 다시 등장하면 노동계에서도 적지 않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상황이다. 지적대로 ‘노동운동이 바뀌었더라면’하는 식의 후회일 것이다. 대기업·정규직이 100을 벌면 중소기업·비정규직이 40~50을 벌 정도로 임금 격차는 더 심해졌다. 1987년 대투쟁 이후 19.8%까지 치솟았던 노조 조직률은 1997년부터 2021년까지 10~14%에 갇혔다. 그런데 14.2%의 대부분은 대기업·공공 부문 노조다. 나머지 ‘86% 비노조 근로자’는 노조를 통한 임금 인상 동력이 없다는 얘기다. 대기업 약 60%는 연공에 따른 호봉제 혜택을 누린다. 이제 비정규직은 40%를 육박한다. 노조를 두고 관성적 파업을 하는 기득권 집단이라는 비판도 그때 그대로다.

정부의 노동 개혁도 양극화된 사회를 바꾸자고 시작됐다. 하지만 개혁 속도가 숨이 찰 정도다. 똑같이 사회적 약자 보호를 내건 노정이 왜 노동 개혁을 두고 갈라졌는지 공론화할 겨를도 없다. ‘노노 착취’ ‘노조 개혁’ 등 노동 개혁을 둘러싼 정부 언어까지 거칠다. 정부의 설명도 공감대를 이끌기에는 단선적이다. 정부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노조의 재정 자립도가 어떤지 살펴보지 않는다. 장시간 근로를 원하는 근로자가 있다면서 낮은 임금 탓에 장시간 근로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고민을 지나친다. 무엇보다 정부는 ‘86% 비노조 근로자’가 스스로 임금 인상을 위해 노조를 더 많이 결성해야 한다는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을 못할 것이다.

지난해 동투(冬鬪·겨울 투쟁)처럼 올해도 수만여 명의 모이는 대정부 집회와 총파업이 예정됐다. 노동 개혁안을 비롯해 중대재해법·노란봉투법 등 마주할 현안이 산적한데 노정 대화는 끊겼다. 노조가 구심점인 노동운동은 역사적으로 억압할수록 힘을 얻었다. 국정 지지율은 ‘노조·노동 개혁’을 통해 올라갔다. 진정 노동운동이 ‘왕자병 환자’로 남기를 원하는 것은 누구인가.


세종=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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