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정부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게 맞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MZ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가 고용노동부의 올해 노조 지원 사업에 신청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협의회는 신생 단체인 탓에 사무실은커녕 회의·식비 등 운영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소속 민간 사업장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는 노조의 목표를 위해 정부 재원을 쓰는 게 맞는지 근본적인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새로고침협의회가 ‘홀로서기’를 결정할 경우 최근 노조에 대한 정부 지원 논란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고침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9일 “최근 고용부가 올해 노조 지원 사업에 관한 안내문을 보내왔다”며 “하지만 정부 지원 사업에 신청하는 것이 맞는지 위원들 간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협의회)보다 더 재정 상황이 나쁜 노조에 정부 지원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올해 44억 원 규모의 노동단체 지원 사업 예산 중 절반(22억 원)을 신규 참여 기관에 처음 배정했다. 근로자협의체·MZ노조 등 새 노동단체로 지원 범위를 넓힌 것이다.
지난달 4일 공식 발족한 새로고침협의회는 사실상 자체 운영비가 ‘제로’다. 협의회에 참여한 9개 노조의 기금에서 협의회 회의, 식비, 홈페이지 제작 등 관련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사무실도 아직 구하지 못했다. 참여 노조의 재정 상황도 넉넉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LG전자·서울교통공사 등 대기업 또는 공공기관 노조지만 모두 제1노조가 아닌 소수 노조다. 이 때문에 대부분 교섭권이 없어 제1노조에 비해 사업장 내 입지가 좁다. 몇몇 곳은 제1노조와 갈등 관계다. 하지만 협의회는 앞으로 필요한 재원이 더 늘어날 상황이다. 기존 시위에서 벗어난 쟁의행위 방식을 연구할 예정이다. 8개 노조로 출범한 협의회는 최근 삼성디스플레이 노조의 참여로 노조 수가 9개, 조합원도 6000여 명에서 8000여 명으로 늘었다.
협의회의 ‘홀로서기 고민’은 예정된 수순으로도 볼 수 있다. 협의회는 양대 노총과 달리 정치 투쟁을 지양하고 노조 본연의 활동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협의회 참여 노조들이 양대 노총에 속하지 않은 ‘독립 노조’로 활동하는 배경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경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협의회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편안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해 주 52시간제에 이어 주 64시간제, 주 69시간제도 가능한 게 골자다. 협의회는 “한국은 연장근로 상한이 높고 산업 현장에서 연장근로가 빈발하다”며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개편안에 반대했다.
반면 노동 개혁을 추진 중인 정부는 협의회에 여러 정부 자문기구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사회적 논의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김문수 위원장은 지난달 협의회 주요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MZ세대 노조가 노동운동과 경제사회 발전의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되고 있다”며 “자주 만나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해 9월 협의회에 참여한 주요 노조를 만나 “현장의 어려움과 고민, 변화 방향을 노동시장 개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달 말 협의회와 간담회를 할 예정이다.
협의회의 정부 지원 거부는 최근 노조 국고보조금 지원, 회계 투명성 강화 등 여러 논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회계장부 제출과 같은 투명화 대책에 따르지 않는 노조에 국고보조금 중단을 결정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동계는 일련의 대책에 대해 노조 자주권을 훼손하는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신생 단체인 협의회가 정부 지원 없이 독립 운영을 할 수 있다면 국고보조금 비판 여론이 운영 적절성에서 지원 자체로까지 번질 수 있다. 협의회는 늦어도 이달 중순까지 고용부의 지원 사업에 대한 신청 여부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