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폭스바겐이 동유럽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려던 계획을 보류했다. 대미 투자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고려해 유럽 대신 북미 지역에 배터리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문제를 우선 검토할 방침이다. 폭스바겐을 시작으로 유럽 기업의 북미행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해 폭스바겐이 당초 계획했던 유럽 배터리 공장을 짓기 전에 미국 IRA 보조금과 관련한 유럽연합(EU)의 대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폭스바겐은 지난주 EU 집행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나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지을 경우 90억~100억 유로(약 14조 원)의 혜택이 기대된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스바겐 관계자는 “북미 공장 건설 계획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유럽 공장에 대한 의사 결정보다 우선시되고 있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이 북미행으로 기운 데는 IRA로 인한 혜택이 크다는 판단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IRA는 배터리에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부품을 50% 이상 사용하고 배터리 핵심 광물의 40%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해야 세액공제를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맞서 EU도 역내 기업에 보조금 및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유럽판 IRA’를 준비 중이지만 재원 마련에 발목이 잡히면서 벌써부터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유럽 내 기업들의 이탈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스웨던 전기자동차 배터리 업체인 노스볼트는 보다 구체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공장 설립지를 독일에서 미국으로 옮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미국 공장 설립 시 노스볼트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80억 유로 이상으로 알려졌다. 유럽 환경단체인 ‘교통과환경(T&E)’은 유럽 내 배터리 생산 기지 프로젝트의 3분의 2 이상이 취소되거나 미뤄질 위기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