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리 인상의 여파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수신 잔액이 급격하게 늘어난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을 중심으로 리스크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축은행의 경우 수신 금리를 무리하게 올렸다가 ‘역마진’까지 우려되는 상황인 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기업대출 연체를 둘러싼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국민연금도 SVB가 속한 SVB 금융그룹의 주식을 작년 말 기준 10만795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말 주가 기준으로 2300만달러(약 304억원) 규모다. SVB가 사실상 파산하면서 전체 투자금 회수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예금 급증했지만 건전성 ‘빨간불’
SVB가 공격적으로 유치한 예금을 장기로 묶인 자산에 투자하다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만큼 국내에서도 무리하게 금리를 올려 시중 자금을 끌어모은 신용협동조합·상호금융·저축은행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신협에 몰린 수신 잔액은 총 123조 원으로 6개월 만에 6.79%(8조 2621억 원) 급증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수신 잔액도 지난해 상반기 말보다 각각 3.2%씩 늘어난 약 120조 원, 459조 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전체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잔액 상승률(0.95%)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보호해야 할 예금과 고객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지만 건전성에는 ‘경고등’이 켜졌다. 예금보험공사가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평균 연체율은 3%로 지난해 상반기 말 대비 0.4%포인트나 급증했다. 합산 연체액도 같은 기간 2조 9772억 원에서 3조 4344억 원으로 늘었다. 저축은행 업권의 연체액이 3조 원을 넘긴 것은 2016년 상반기 말 이후 처음이다.
‘PF대출 부실’ 불씨 여전
한은의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나타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전체 금융권의 PF 대출 연체율도 직전 분기 대비 0.11%포인트 상승한 0.61%를 기록하며 최근 3년 내 최고치를 나타냈다. 2021년 말 2만 가구에 미치지 못하던 미분양 주택이 올해 1월 7만 가구를 넘어서는 등 주택 시장 침체가 심화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증권사·저축은행 등의 부실 위험이 커졌다.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증권사의 부동산 대출 연체 잔액은 총 3638억 원, 연체율은 금융 업권 중 가장 높은 8.16%에 달했다. 연체 잔액이 3000억 원인 저축은행 업권의 연체율은 두 번째로 높은 2.80%로 집계됐다.
기업대출 연체율도 급등
영업 활동으로 번 돈을 다 합쳐도 이자를 낼 수 없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이 늘면서 연체율도 뛰고 있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코스피·코스닥) 1664곳 중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비중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34.9%(581개)로 전년 동기 대비 1%포인트 증가했다.
서병호 한국금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이 대기업 위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로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적 부실이 누적되고 있다”며 “부실채권 중 기업 여신이 80%를 상회하는 데다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중소기업의 비중이 50%를 상회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일단 금융 당국은 SVB 사태와 국내 은행 간 직접적 연관이 없고 자본 건전성도 강화된 상태인 만큼 관련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긴급 점검에 나섰다.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은 ‘거시경제·금융현안 관련 정례 간담회’를 열어 SVB 사태에 따른 파장을 집중 점검하고 관련 상황을 24시간 면밀히 모니터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