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취임 후 첫 단독 인터뷰를 서울경제와 갖고 그간 강조해온 KT·포스코 등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사회 구성과 대표 선임에 주주 의사가 반영되는 것”이라며 “그런 면에서 우리금융지주가 하나의 사례”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기금운용수익률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과 관련해 “(수익률이 더 나은) 해외 주식과 채권의 현지 운용을 늘릴 것”이라며 “올 들어 5%대 수익을 올리며 기금 규모도 930조 원 이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9일 국민연금 서울 강남 사옥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김 이사장은 연금 개혁에 대해 “5년 전 개혁을 미룬 것만으로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1.7%포인트 더 늘었다”며 “더는 미룰 수 없는데 성공의 키는 ‘젊은 세대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연금 개혁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다음 달 스웨덴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종료된 한국은행과의 외환 스와프에 대해 “필요시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며 “운용수익률을 제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최근 주주 행동주의가 활성화하는 데 대해 “소액주주에게 다양한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대담=손철 시그널부장 겸 증권부장
김 이사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한 후 지배적 주주 없이 외국인과 기관·법인 등으로 지분이 나뉜 ‘소유분산기업’의 폐쇄적 지배구조를 비판해왔고 그 연장선에서 구현모 KT 대표가 연임을 포기한 바 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대주주로 포진해 있어 김 이사장의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향은 재계의 관심을 모아왔다.
그는 “소유분산기업의 이사회나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때 주주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소유분산기업인) 금융지주사들 중 과점주주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우리금융지주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금융은 과점주주가 이사 후보를 추천해 이사회가 구성되고 그분들이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또 최근 논란이 된 기금운용수익률에 대해 “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 송구할 뿐”이라며 “지금은 ‘기승전 수익률’인 것을 안다. 기금운용본부에 ‘수익률을 1%포인트만 올려도 국민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는 각오로 해나가자’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지난해 운용수익률이 -8.22%를 기록해 80조 원가량 손실이 났지만 이는 평가손실로 실제 발생한 손실은 아니다”라면서 “올 들어 3월 초까지 5%대 수익률을 기록해 기금 규모도 930조 원 수준까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이어 윤 대통령이 “기금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데 대해 "수익률 제고를 위한 대책들을 보건복지부와 협의하고 있다”며 당장 시행할 몇 가지 대응책을 제시했다.
김 이사장은 “운용수익률을 보면 국내 자산보다 해외 자산이나 대체가 높다”면서 “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 해외 및 대체투자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뉴욕·런던·싱가포르의 국민연금 해외 사무소에서 주식과 채권을 직접 운용하도록 할 것”이라며 “대체투자도 현지 우수 운용사에 국민연금이 지분을 투자해 전략적 파트너로 삼은 뒤 함께 투자 프로젝트를 개발하면 운용사에 줘야 할 수수료를 줄이면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해외 채권을 안정적인 국공채와 수익을 위한 회사채(신용채)로 분리해 투자하고 미국 주택저당증권과 신흥국 채권 등은 해외 사무소에서 직접 운용할 계획이다. 240조 원이 넘는 해외 주식의 경우 국민연금이 일부를 직접 운용했지만 시가총액 등 지수 변화만 따르는 패시브 투자 전략이 대부분이었다. 김 이사장은 “향후 기업가치 등을 반영한 ‘대안지수’를 도입해 초과 수익을 달성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해외 사모투자 역시 기업 경영권을 사고파는 투자뿐 아니라 사모대출 및 사모펀드가 이미 투자한 기업의 지분을 사들이는 ‘2차 거래(세컨더리)’ 등으로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최근 글로벌 금리 상승으로 가파르게 올랐던 비상장사들의 기업가치가 조정을 받고 있어 투자 매력도가 높아진 만큼 국민연금의 풍부한 유동성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다만 김 이사장은 “대체투자 수익률이 높기는 하지만 위험자산이기 때문에 오를 때 더 오르는 대신 내릴 때 더 많이 내릴 수 있다”면서 “적정한 수준을 고려해 자산을 배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운용수익률 개선에서 급선무는 운용역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기금운용본부에 인력 이탈이 많은데 보수나 정주 여건, 근무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획재정부가 국민연금이 좋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성과급 한도나 인력 충원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주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국민연금과 복지부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강조한 만큼 국민연금의 고급 인력 확보에 장애물로 꼽혔던 기재부의 국민연금 인건비 총액 제한이 융통성 있게 운영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말 종료된 한은과의 외환 스와프에 대해 “앞으로도 환율이 급등할 경우 언제든 재가동할 수 있게 체계를 구축해놓고 있다”며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급등할 경우 외환 스와프 거래를 재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환율은 기금의 수익률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외화 자산 규모가 400조 원에 달해 해외투자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환율 급등을 유발한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이에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까지 100억 달러 한도로 달러를 한은에서 조달하는 외환 스와프(사전에 정한 가격으로 원화와 달러를 교환) 협정을 맺은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연금 개혁을 놓고 김 이사장의 고민도 깊을 수밖에 없다. 그는 “공단이 국회와 정부에서 논의 중인 연금 개혁이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나갈 것”이라며 “5차 재정계산 시산 결과 5년 전 개혁을 미룬 탓에 국민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1.66%포인트 이상 늘어난 상황이어서 이번에는 꼭 개혁안을 도출해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연금 개혁의 동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공적인 연금 개혁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스웨덴 연금개혁의 공과를 연구하려 다음 달 스웨덴을 방문할 계획이다. 스웨덴은 1998년 연금제도를 ‘덜 내고 더 받는’ 확정급여형에서 ‘낸 만큼 돌려받는’ 명목 확정기여형으로 전면 개편했다. 대신 18.5%인 보험료율은 더 올리지 않도록 법으로 정했으며 개편 전 연금은 65세부터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62세부터 받고 있다.
스웨덴의 연금 개혁은 가입자들이 더 오래 정규직으로 일할 때 충분한 연금을 받을 수 있어 근로 의욕을 높였고 기대 여명(예상되는 수명)이 늘면 연금 재정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연금 지급액을 축소하는 ‘자동 재정 균형 조정 장치’를 도입해 안정성을 높였다.
김 이사장은 연금의 지속 가능성과 소득 보장, 세대 간 형평성 등 3대 과제를 달성해야 연금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젊은 세대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세대는 ‘내가 낸 연금을 내가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면서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모든 논의는 젊은 세대에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기꺼이 보험료를 내겠다’는 확신을 주는 것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재계와 주식시장의 화두가 된 주주 행동주의에 대해 김 이사장은 시장에 더 많은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과거 SK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소버린 등 해외 헤지펀드가 국내 기업을 주로 공격했지만 최근에는 국내 운용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주 행동주의가 펼쳐지고 있다”면서 “소액 주주들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졌고 국민연금 역시 그들의 주주 제안이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에 부합하는 쪽이라면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다만 “주주 행동주의로 투자 기업에 지나친 단기 실적주의를 추구한다는 우려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가 공존한다”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은 주주 행동주의 전략을 펴는 운용사들이 그동안 기업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장기적인 가치 증대에 기여해왔는지, 특정 시점에만 과도한 요구를 한 것인지 등 그간의 행보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국민연금이 소유분산기업에 직접 주주 제안을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사 후보 추천과 같은 경영 참여 주주 제안을 하려면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변경한 뒤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면서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 제안은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과 적극적 주주 활동 가이드라인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탁자 책임 활동에 대해서는 “객관성·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명망 있고 경험 있는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기금본부 내에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