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상장사들의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본격화 됐다. 다양한 주총 안건 중에서도 불확실한 글로벌 경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각사의 전략이 눈에 띈다. 오너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비상경영 체제를 구축하는가하면 자금 조달 한도를 미리 늘려 복합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복안이다.
◇위기 대비 일선 복귀…오너家 경영권 확대=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헬릭스미스를 시작으로 17일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21일 보령 등 30일까지 50여 개 제약·바이오 기업이 주총을 개최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현장은 28일 열리는 셀트리온(068270) 주총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2년여만에 복귀하기 때문이다.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091990), 셀트리온제약(068760) 등 그룹 내 상장 3사의 사내이사, 이사회 공동의장으로 서 명예회장을 재선임하는 안건이 표결로 결정된다. 서 회장은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소방수'를 자처하며 2년간 바이오시밀러 신제품 출시, 신약 개발, 3사 합병 등 주요 사안을 신속하게 결정할 전망이다.
엔데믹 전환에 따라 실적이 급감한 바이오노트도 조영식 회장이 2년만에 사내이사로 복귀한다. 바이오노트의 2022년 매출은 4797억 원으로 전년 대비 22.9% 급감했다. 코로나 이외 진단사업에서 신성장 동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번 주총에서는 오너 2·3세의 사내이사 선임이 많이 이뤄질 전망이다. 삼진제약은 공동 창업주 조의환·최승주 회장의 자녀인 조규석·최지현 부사장을 각각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한다. 파마리서치는 창업주인 정상수 회장의 장녀, 정유진 파마리서치USA 법인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올렸다.
HLB(028300)가 최근 인수한 반도체 리드프레인제조기업 피에스엠씨는 HLB이노베이션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진양곤 회장의 차녀인 진인혜 베리스모테라퓨틱스 과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HLB이노베이션의 바이오사업을 베리스모에서 주도하는데 전 신임 이사가 해당 CAR-T 개발을 이어갈 계획이다.
◇성과 올린 CEO 재선임…'안정' 택한 경영진=삼성바이오로직스는 존림 대표를 사내이사로 재선임한다. 존림 대표는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 3조 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태한 의장이 임기 만료로 물러나는 자리에 노균 부사장(EPCV 센터장)을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한미약품(128940)은 29일 주총에서 1세대 전문 경영인들이 물러나고 박재현, 서귀현, 박명희 사내이사를 재선임한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에서 오너 2세들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새로 올라오지 않아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기 만료를 앞둔 창업주의 차남, 임종훈 사장의 재선임 안건은 없는 만큼 이사회에는 오너 2세 중 장남인 임종윤 사장만 남게 될 전망이다. 한미사이언스에서 송 회장의 사내 재선임 안건은 확정됐다.
제일약품(271980)은 성석제 현 대표이사가 업계 최장 대표이사 연임을 노린다. 일동제약(249420)의 서진석 사장, JW중외제약(001060)의 신영섭 대표이사 모두 재선임 안건 의결을 앞두고 있다.
◇CB·BW 총동원…선제적 자금 조달 대비=정관 변경을 통해 발행예정 주식, 전환사채(CB)과 신주인수권부사채(BW) 한도를 늘리는 안건도 이목을 끈다. 불확실한 외부 경기 악화에 대비해 미리 자금 확보를 위한 한도를 확대하려는 방안이라는 해석이다.
유유제약(000220)은 30일 주총에서 3년 만에 발행예정주식 총수를 4000만 주에서 6000만 주로 상향한다. 오는 6월 안구건조증 신약 임상 2상 결과를 포함해 신약개발의 임상 자금에 CB 등이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HLB도 리보세라닙의 간암, 선양난성암 등에 대한 추가적인 상업화 자금에 마련에 대비해 CB와 BW 한도를 각각 2000억 원에서 4000억 원으로 늘렸다.
큐리언트(115180)는 발행예정 주식 총수를 5000만 주에서 1억 주, 앱클론(174900)은 5000만 주에서 7000만 주로 늘렸다. 이수앱지스(086890)는 CB·BW 한도를 2000억 원에서 3000억 원, 차백신연구소(261780)도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각각 상향하는 안건 의결을 올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발행예정 주식수, CB·BW 한도 상향은 매년 주총마다 올라오는 안건 중 하나”라며 “경기 악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자금 조달을 준비하는 불가피한 대응책”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