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16일 기준금리를 종전보다 50bp(1bp=0.01%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석 달 째 이어갔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과 스위스의 세계적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에 대한 우려로 금융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지만, ECB는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목표를 고수했다.
ECB는 이날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3.50%로 종전보다 50bp 올리고, 수신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3.0%와 3.75%로 기존 대비 50bp 올렸다고 밝혔다. 50bp 인상을 내다봤던 시장 전망과 부합하는 결과다. ECB는 지난해 9월과 10월 주요 정책금리를 두 달 연속 75bp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실시한 바 있으며, 작년 12월부터는 3개월 연속으로 50bp씩 기준금리를 올렸다.
ECB 측은 통화정책 결정문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너무 오랫동안 높은 상태를 유지할 공산이 커서 금리 인상을 계획한 대로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시장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ECB는 최근 높아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우려에 “유로존(유로화사용 20개국) 은행부문은 튼튼한 자본과 유동성을 보유한 덕에 회복력이 있다” “ECB는 필요하면 어떤 경우에도 유로존 금융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해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정책적 수단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금융 시장이 혼란 속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긴축적 통화정책을 철회하라는 투자자들의 요구를 무시한 것”으로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SVB의 파산 이후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ECB가 금리 인상 폭을 25bp 선으로 낮출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잭 앨런-레이놀즈 캐피탈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ECB가 가장 위험한 옵션을 선택했다”며 “다른 은행이 CS와 같은 폭풍에 휘말릴지에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의 결정문에서 향후 기준금리의 방향성에 대한 지침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덜 공격적 통화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로한 칸나 UBS 금리 스트래티지스트는 “ECB가 통화 정책과 금융 안정성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 매우 어려운 위치에 있다”며 “근원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은행 시스템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앞으로의 금리 인상 속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