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아동 강제 이주 혐의와 관련해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당장 푸틴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실상 ‘전범’ 딱지를 붙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18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ICC는 전날 푸틴 대통령과 마리야 리보바벨로바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 담당 위원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ICC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아동들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의 책임이 이들에게 있다고 볼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이후 ICC가 러시아 최고위급 인사를 피의자로 특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 원수가 ICC의 체포 영장 발부 대상이 된 것은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전 대통령,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독재자에 이어 세 번째다. 푸틴 대통령과 함께 이름을 올린 리보바벨로바 위원은 아동 강제 이송을 총괄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우크라이나 등에서 18명을 입양했다.
러시아가 2016년 ICC를 탈퇴한 만큼 푸틴 대통령을 단기간에 재판에 넘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이번 조치의 의미는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인도주의적 목적에서 우크라이나 아동 2000명을 이주시켰다고 공공연히 주장해왔지만 ICC는 전쟁범죄라는 판단을 내린 셈이어서다. ICC에 가입한 123개국에 피의자 체포 및 이송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의 방문 가능 지역을 제한하는 효과도 있다. 스테판 랩 전 미국 국무부 국제형사사법대사는 “이번 조치는 푸틴을 고립된 존재로 만든다”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처럼 푸틴도 결국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저지른 전범 혐의로 2001년 체포돼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재판을 받다가 숨졌다.
러시아 외무부가 이번 영장에 대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한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보란 듯이 우크라이나 내 병합지들을 활보했다. AP통신·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8일 크림반도 병합 9주년을 맞아 크림반도의 서남부 도시 세바스토폴을 직접 차를 운전해 방문했으며 19일에는 개전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마리우폴과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전선을 시찰했다. 도네츠크는 러시아가 지난해 5월 일방적으로 병합을 선언한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