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해외에서는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 행위’로 규정하고 최대 수십 년의 징역형을 내리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에서 일부 간첩죄 개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현실화까지는 아직 먼 상황이다.
19일 국회 등에 따르면 최근 산업기술 유출자와 산업스파이 등을 간첩죄로 처벌해 국가 중요 산업을 보호하려는 입법 작업이 시작됐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과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이와 관련한 입법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조 의원이 지난달 10일 대표 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간첩죄에 국가핵심기술과 방위산업기술 등 산업 기밀을 적국과 외국, 외국인 또는 외국인의 단체에 부정한 방법으로 유출한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조 의원실 관계자는 “여야 모두 상당 부분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빠르게 입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 역시 “첨단산업 시대에 맞춰 간첩 행위의 형태가 변모했다”며 같은 취지로 입법안을 제시했다. 다만 현재 국회가 강제징용 제3자 변제나 야당 대표 검찰 수사 등 정쟁에 휩싸인 상황으로 법안이 언제 통과될 수 있을지는 요원하다.
산업계에서는 하루 빨리 해당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가의 핵심 경쟁력인 산업기술을 무단으로 유출했다는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현재 처벌 수위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기술 해외 유출을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규정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영업비밀 위반은 1년에서 3년 6개월, 산업기술 유출은 2년에서 6년 사이로 양형이 정해져 있지만 집행유예가 나오는 경우도 상당수다. ‘안 걸리면 수십, 수백 억 원을 벌 수 있는 기회이고 걸려도 집행유예에 그친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외국의 경우 기술 유출 행위를 간첩 내지는 반역 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제재 하는 곳이 많다. 미국은 연방법 간첩죄 조항에서 ‘외국의 이익을 위해 기밀 정보를 사용하거나 산업스파이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하고 있다. 법정 최고형은 징역 20년에 추징금 최대 500만 달러(약 65억 5000만 원)로 국내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량이 높다. 독일과 일본·대만 역시 타국에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국가 기밀을 권한 없는 자에게 전달하는 행위를 높은 수위로 처벌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첨단 기술을 선도하게 된 한국 기업들을 법이 제대로 발맞춰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술 유출 범죄는 해외 정도의 수위로 처벌해야 관련 범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