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자산과 채권 정리를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상설 기금을 설치하는 입법이 이달 추진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계기업의 부실 위험이 증가한 데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금융·재정 리스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외생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한국자산관리공사 설립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이달 중 발의할 계획이다. 법안은 캠코에 부실자산 및 채권 정리를 위한 상설 기금인 ‘안정도약기금(가칭)’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상 부실채권정리기금과 구조조정기금 등이 명시돼 있기는 하지만 오래전 일몰돼 효력을 상실한 상태다. 이에 한시 기금이 아닌 상설 기금을 설치해 캠코가 중장기 계획 아래 정부 주도의 배드뱅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번 입법 취지다. 개정안은 금융회사와 정부의 출연금, 한국은행 차입금 등으로 재원을 조성하도록 명시했다. 금융회사가 보유한 부실자산이나 부실채권 인수 정리, 구조 개선 기업이 보유한 인수 정리 등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위원회 의결을 거쳐 안정도약기금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배드뱅크 지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올 초 제시한 ‘9대 민생회복 프로젝트’ 중 하나다. 그뿐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소상공인 지원책으로 추진할 정도로 중요한 의제로 부각돼왔다.
여기에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SVB 사태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 변수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높였다. 특히 우리 경제의 잠재적 리스크로 손꼽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차입 비중이 큰 스타트업 등 시장에서 선제적인 대응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과거에도 정부는 경제위기 때마다 배드뱅크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 바 있다. 일례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는 기업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설치해 부실채권 약 148조원을 정리했다. 다만 구제 대상 선정 방식이나 채무자의 ‘도덕성 해이’ 문제는 배드뱅크 설립 전 넘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과거 외환위기나 카드 대란 당시에도 한시적으로 부실채권 정리 기금을 운영했지만 각종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주기가 짧아지는 상황에서는 상설 기금이 선제적인 안정 장치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