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한국형 나사(NASA)’ 우주항공청 신설을 두고 여야 간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다. 야당이 우주항공청 신설 관련 법안과 충돌하는 내용을 담은 별도 법안들을 잇달아 발의하면서다. 여당 입장에서는 우주항공청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면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
◇야당, 우주발사체 발사 권한 과기정통부 독점에 제동=20일 국회에 따르면 김병주 의원 등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10명은 이달 10일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있는 우주발사체(로켓) 발사 권한에 대해 안보 목적 등 긴급한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국방부 장관이 신속 허가를 할 수 있도록 법으로 명시하자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국방부의 우주발사체 역할이 커진 만큼 권한을 조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병주 의원실 관계자는 “국방부는 지난해 말 고체연료 발사체의 시험발사 성공을 계기로 발사체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내년이면 인공위성과 관련한 사업 예산도 과기정통부를 추월하게 된다”며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우주발사체의 안전관리 등 업무 효율을 높이려면 지금처럼 권한을 일원화해야 한다”며 “국방위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에 반대 입장”이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의 움직임은 정부가 구상 중인 우주항공청 신설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현재 과기정통부 장관이 가진 우주항공 관련 권한을 우주항공청장에게 그대로 넘겨준다는 구상이다. 우주항공청 계획의 법적 근거인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우주항공청 특별법)’ 제정안은 우주개발진흥법을 개정해 우주발사체 발사허가 주체를 ‘과기정통부 장관’에서 ‘우주항공청장’으로 바꾼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이 제기한 과기정통부-국방부 간 발사 권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정부가 구상하는 우주항공청장 권한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 의원은 “국방부 입장에서는 차관급인 외청장(우주항공청장)에게 (발사 권한을) 넘길 수 있겠느냐”며 “첩보·정찰위성 등 안보 목적의 신속 대응이 필요한 업무를 우주항공청장이 모두 컨트롤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사 권한을 조정하자는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과 정부의 우주항공청 특별법 제정안 모두 과방위에서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사뭇 달라 향후 입법 논의 과정에서 격돌이 예상된다.
◇야당은 우주청 대신 우주위원회 전략본부 신설 추진=여야 간 이견은 우주발사체(로켓) 발사 권한만이 아니다.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아예 우주항공청과 다른 형태의 우주항공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신설하기 위해 별도의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우주항공청이 과기정통부 산하의 외청 형태로서 기존 공공기관 규제를 뛰어넘는 파격적 인재 영입 등이 가능한 독립성에 집중한다면 야당은 대통령 직속 국가우주위원회 산하의 전략본부 형태를 채택해 범부처 정책을 총괄·조율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국방부 등과 조율을 위해서는 차관급인 우주항공청장이 아닌 장관급인 전략본부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여당은 우주항공청 계획을 점점 구체화해 지금 형태로도 이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주항공청이 들어설 소재지도 쟁점 중 하나다. 정부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우주발사체 기업들이 자리한 경남 사천시에 우주항공청을 두고 민·관 시너지를 키우자는 구상인 반면 야당과 학계·업계에서는 과기정통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이 위치해 우주항공 정책 시너지가 가능한 대전이 더 적합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KAI 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정치 논리와 지역 이기주의로 우주항공청 대전 설립을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처사”라며 “야당이 발의한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은 철회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