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兆) 단위의 ‘대어’가 자취를 감추면서 1분기 기업공개(IPO) 시장의 상장 주관 성적은 중소형 딜을 얼마나 많이 따냈느냐로 갈렸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006800) 등 전통의 IPO 강자들이 선두권을 형성한 가운데 일부 중견 증권사들도 약진하는 성과를 거뒀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분기 신규 상장했거나 상장 예정인 기업은 총 16곳(스팩 제외)이다. 모두 코스닥 상장사로 14곳이 상장을 완료했으며 LB인베스트먼트·지아이이노베이션 등은 최근 일반 청약을 마치고 각각 29일·30일 상장될 예정이다.
대표 주관 건수는 한투와 미래에셋이 각 3건으로 공동 1위다. 한투는 가장 많은 청약증거금(5조 4547억 원)을 끌어모은 나노팀(417010)을 비롯해 제이오(418550)·오브젠(417860)의 대표 주관을 맡았다. 미래에셋은 역대 벤처캐피털 IPO 중 가장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한 LB인베스트먼트를 포함해 한주라이트메탈(198940)·스튜디오미르(408900)의 대표 주관사였다.
인수 금액만 놓고 보면 한투가 약 926억 원으로 미래에셋(521억 원)보다 약 400억 원 앞섰다. 인수 금액이 컸던 만큼 한투는 인수 수수료도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약 35억 원을 벌어들였다. 이는 미래에셋이 한주라이트메탈 상장 과정에서 현대차증권(001500)과 공동 주관을 맡아 인수 금액이 분산됐기 때문이다.
키움증권(039490)은 꿈비(407400)·샌즈랩(411080) 등 2건을 대표 주관하며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인수 금액은 총 489억 원이었으며 수수료 이익은 약 25억 원으로 미래에셋보다 많았다. 샌즈랩의 인수 수수료율이 5%로 높아 한 번에 약 20억 원을 벌어들인 덕분이다.
중견 증권사들의 약진도 뚜렷했다. 한화투자증권(003530)은 올 첫 상장사인 티이엠씨(425040)의 대표 주관을 맡으며 2012년 이후 10년 만에 단독 주관사 복귀에 성공했다. 신영증권(001720)과 DB금융투자(016610)·현대차증권·IBK투자증권도 각 1건씩 대표 주관을 따내 성공적으로 상장을 마쳤다.
반면 지난해 역대 최대 공모액(12조 7500억 원)을 기록한 LG에너지솔루션(373220) 상장을 주관하며 IPO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KB증권은 아직 한 건의 IPO도 진행하지 못했다. 이날 기준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 심사를 청구한 기업들 중 KB증권과 주관 계약을 체결한 기업도 아직 없어 당분간 실적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던 NH투자증권(005940)도 지아이이노베이션 1건을 하나증권과 공동 주관하는 데 그쳤다.
다만 투자은행(IB) 업계는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하는 대형사들의 IPO 불씨가 꺼지지 않은 만큼 단 한 곳이라도 상장에 성공할 경우 리그 테이블 순위는 단숨에 역전될 수 있다고 본다. KB증권은 조 단위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두산로보틱스와 LG CNS의 주관사를 맡고 있다.
금융 당국의 심사가 까다로워진 게 시장의 변수다. 당초 3월 상장을 목표로 했던 에스바이오메딕스는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정정 제출 요구로 상장 일정을 한 달 이상 늦췄다. 대표 주관사는 미래에셋이다. 키움증권이 대표 주관을 맡은 틸론은 금감원의 정정 요구로 상장 일정을 연기한 상태다. 한투가 대표 주관을 맡았던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첫 상장 액셀러레이터(AC)를 목표로 하다 거듭된 정정 요구에 상장을 아예 철회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대어들이 사라지면서 중소형 딜을 많이 따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상장을 차질 없이 마치는 게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2분기 상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에스바이오메딕스와 틸론을 포함해 마이크로투나노(한투), 토마토시스템(교보증권), 모니터랩(미래에셋), 나라셀라(신영증권)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