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기업, 실물과 금융 등 모든 부문의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가 금융 시스템 상황을 보여주는 ‘금융불안지수(FSI)’는 2월 21.8로 5개월 연속 ‘위기’ 단계를 이어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225.1%로 12분기 연속 최대치를 경신했고 비은행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규모도 115조 5000억 원에 달했다. 가계 대출 연체율도 지난해 말 현재 0.66%로 1년 전보다 0.14%포인트나 올랐으며 소득의 70%를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하는 고위험 차주의 비중은 15.3%에 이르렀다. 가계와 기업이 모두 빚더미에 짓눌려 자칫하면 부채 폭탄이 터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언이나 “고금리로 잠재된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한은의 경고는 이런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문제는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베이비스텝(O.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으면서 ‘연내 금리 인하는 없다’고 못 박아 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당초 예상인 빅스텝보다는 보폭이 작았지만 이는 물가 안정세 때문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봐야 한다. 한미 금리 격차는 22년 만에 최대인 1.5%포인트로 벌어져 자금 이탈 우려가 더 커졌다. 한은은 금리를 올리자니 한계에 이른 빚이 부담이고 동결하자니 자금 이탈을 우려해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연준의 베이비스텝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SVB 같은 중소 규모 은행의 파산 이후 증시에서 1조 3000억 원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자칫 무역수지 적자가 더 확대되고 내수와 고용마저 고꾸라져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가 꺾이면 무더기 도산과 대규모 자금 이탈이라는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한순간에 몰려올 수 있다. 위기에 대응하려면 결국 허리띠를 졸라매고 잠재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부실을 정리하고 위기의 파도를 막을 방파제를 높이 쌓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