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당사자인 권도형(사진) 테라폼랩스 대표가 1년 간의 해외 도피 끝에 체포됐다. 그러나 권 대표에 대한 국내 재판이 열리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싱가포르도 권 대표 수사를 동시 진행 중인 탓에 국내 송환 절차가 복잡하고, 검찰이 권 대표에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선 테라·루나의 증권성 입증이 우선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24일 유럽 몬테네그로 정부에 따르면 전날 몬테네그로 공항에서 검거된 권 대표는 지문 조회를 통한 신원 최종 확인을 거쳐 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고 있다. 권 대표는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하기 한 달 전인 지난해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이후 두바이·세르비아 등 여러 국가를 거치며 수사망을 피해왔다. 해외 도주를 이어가며 1년 가까이 행방이 묘연했던 권 대표가 이날 덜미를 잡힌 것이다.
권 대표는 지난해 테라·루나 폭락 사태를 촉발한 핵심 인물로 지목되며 검찰 수사망에 올랐다. 권 대표는 지난 2018년 소셜커머스 티몬 창업자 신현성 대표와 손을 잡고 테라폼랩스를 설립해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와 UST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암호화폐 루나(LUNA)를 발행했다. 루나를 담보로 UST를 예치하는 ‘앵커프로토콜’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루나는 한때 전세계 시가총액 순위 4위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수요·공급에 따라 루나를 발행하거나 소각하는 알고리즘 방식으로 1달러에 고정됐던 UST의 가치가 무너지면서 루나 가격도 99% 이상 폭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이에 각국 사법당국은 권 대표가 테라의 기술력과 암호화폐의 안정성에 대해 투자자들을 오도했다고 보고 권 대표 수사에 돌입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지난해 9월 권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 6명에 대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를 사기 혐의로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권 대표 체포 소식이 전해지며 미국 뉴욕 검찰도 권 대표를 증권사기와 시세조작등 8개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싱가포르 경찰도 지난달부터 권 대표를 암호화폐 사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다발적인 수사가 이뤄지면서 권 대표에 대한 재판 진행은 오히려 난항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각 국가에서 권 대표를 법정에 세우려고 시도한다면 국내 송환을 위한 절차는 더욱 복잡해진다. 몬테네그로 당국이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로 권 대표를 인계하기로 결정한다면 권 대표에 대한 국내 재판이 당장 이뤄지기 어렵다.
검찰의 증권성 입증도 풀어야 할 과제다. 검찰이 권 대표에 적용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유효하려면 테라·루나의 증권성이 성립돼야 하는데 증권성 판단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암호화폐의 증권성 판단 지원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며 기준 정립에 속도를 내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이르면 올 상반기 판결이 나올 미 SEC와 리플랩스의 소송 결과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SEC는 지난 2021년 리플랩스가 발행한 리플(XRP)을 증권이라 보고 리플랩스를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