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시장을 접수한 K-배터리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테슬라 등 미국 전기차 업체들의 잇따른 러브콜에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한 때 투자를 재검토하기로 했던 미국 애리조나 주 배터리 공장을 다시 짓기로 했다. 픽업 전기차 ‘F-150 라이트닝’의 배터리 화재 원인을 둘러싸고 SK온과 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했던 포드도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가 양사의 미국 배터리 합작 공장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불화설을 일축했다. 배터리 제조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내용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을 계기로 미국 전기차 제조사를 중심으로 고품질·고성능을 갖춘 K-배터리의 매력이 재부각되는 모습이다.
“배터리 좀 공급해주세요"…잇단 러브콜에 마음 돌린 LG엔솔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4일 이사회에서 미국 애리조나에 7조 2000억 원을 들여 북미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 지역의 일곱 번째 생산 시설로 규모도 당초 계획보다 4배나 키웠다. 북미 배터리 시장 성장세에 대한 LG엔솔의 확신을 엿볼 수 있는 투자로 2025년부터 배터리가 본격 양산되면 테슬라·루시드 등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에 공급될 것으로 알려졌다.
애리조나 공장 건설이 취소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LG엔솔은 오히려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7조 2000억 원을 투입해 신규 원통형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다. 생산 능력은 43GWh로 북미 지역에 위치한 글로벌 배터리 독자 생산 공장 중 사상 최대다.
원통형 배터리 공장은 올해 착공된다. 2170 원통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할 예정이며 테슬라를 비롯해 루시드·리비안·프로테라 등 미국 주요 전기차 회사에 공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투자를 통해 LG엔솔은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되는 원통형 시장을 선도해 글로벌 최고의 배터리 기업으로서 위상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원통형 배터리 시장은 지난해 36조8000억원에서 2026년 70조20000억원까지 2배 가까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LG엔솔은 또 글로벌 배터리 업체 중 처음으로 ESS 전용 배터리 생산 공장도 짓는다. 3조 원을 투자해 총 16GWh 규모로 건설되는 이 공장에서는 LG엔솔이 독자 개발한 파우치형 LFP 배터리가 생산된다. 2026년 양산이 목표다.
LG엔솔 관계자는 “전기차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북미에서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시장이 급성장 하고 있다"며 “이번 대규모 투자로 높은 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美 IRA 시행 이후 中 배터리 매력 감소…日은 생산량 한계
LG에너지솔루션이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배경엔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전기차 회사들의 강력한 공급 요청이 자리 잡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이후 미국 전기차 회사의 배터리 생산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원통형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파트너사로 LG엔솔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권영수 LG엔솔 부회장은 “이번 애리조나 독자공장 건설이 빠르게 성장하는 북미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확실하게 선점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통형 배터리의 최대 고객사인 테슬라는 LG엔솔·파나소닉·CATL 등 3개 업체에서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CATL의 경우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다 미국의 대중국 규제까지 받아 북미 생산 차량에 안정적인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파나소닉도 현재 대부분의 생산 제품을 테슬라에 공급하고 있어 늘어나는 전기차 생산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는 1,195만대로 올 해 956만대 대비 25%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서도 미국 시장이 129만대로 38% 증가하며 중국 (699만대·24%), 유럽 (322만대·21%)을 크게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양질의 원통형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로 LG엔솔이 부각되는 이유다.
테슬라 외에도 루시드를 비롯한 미국의 신규 전기차 스타트업들은 이미 LG엔솔의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초 LG엔솔이 인플레이션 등 경영 환경 악화에 따른 투자비 급등으로 애리조나주 투자를 재검토하기로 했지만 테슬라를 비롯해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물량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투자비 상승이라는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계획된 공장 규모를 더 확대해 고객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부터 원통형 배터리 생산…25년 노하우 축적
LG엔솔은 풍부한 원통형 배터리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2025년부터 차질 없이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다. LG엔솔은 1998년부터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하며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업그레이드해왔다. 현재 국내 오창 공장과 중국 난징 공장에서 원통형 배터리를 활발히 생산하고 있으며 생산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LG엔솔은 애리조나 공장 신설로 주요 거점 지역에 모두 원통형 생산 기지를 확보해나갈 계획이다. 탄탄한 생산 역량을 기반으로 테슬라를 비롯해 루시드·니콜라·프로테라·리비안 등 주요 전기차 기업들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LG엔솔은 주력 제품인 2170 원통형 배터리 생산 외에도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인 4680 연구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는 만큼 파우치에 이어 원통형 시장에서 확고한 선두 지위를 확보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LG엔솔은 2026년까지 ESS 전용 배터리 생산 공장을 완공해 급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ESS 시장도 공략할 예정이다. 북미 시장은 IRA 시행을 계기로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SNE 리서치에 따르면 북미 ESS 시장은 2021년 14.1GWh에서 2030년 159.2GWh까지 10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짐 팔리 포드 CEO “블루오벌시티 진척 놀라워”…SK온 불화설 일축
미국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18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테네시주의 블루오벌시티 건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1년 만에 나아간 진척 단계가 믿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공개했다. 건설 현장 사진도 공유했다.
블루오벌시티는 포드 전동화 계획의 핵심 기지다. 블루오벌시티에는 SK온과의 합작 공장과 전기차 조립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연간 생산능력 43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생산 거점이 지어진다.
업계에서는 포드의 행보를 놓고 SK온과의 묘한 긴장 관계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양사 간 긴장감은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의 생산이 지난달부터 한 달간 중단되면서 불거졌다. 포드 측은 생산 중단 원인에 대해 출고 전 회사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트럭의 배터리 화재 때문이라고 밝혔다. SK온 측은 배터리 이슈에 대해 “일회성 문제이며 원인 규명을 완료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으며 포드는 이달 13일부터 F-150 라이트닝의 생산을 재개했다.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리콜 처분을 받은 F-150 라이트닝 배터리를 조사한 결과 단 18대에서 배터리 내부 합선 문제가 발생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포드는 경쟁이 격화하는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기 위해 SK온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65%)에 이어 점유율 2위에 올라 있다. F-150 라이트닝은 테슬라와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주력 제품으로 올해 초 기준 20만 대 이상 예약 주문이 밀려 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F-150 라이트닝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SK온이 독점 공급하고 있다”면서 “포드가 북미 전기트럭 시장을 선점하려면 SK온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