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세종, 증권 전문변호사 등 뭉쳐 시작… 글로벌 금융위기때 저력 발휘

[법무법인 세종이 걸어온 길]

4명서 첫발…507명 대형 로펌 부상

로펌 합병으로 점차 업무영역 넓혀

송무·부동산까지 컨설팅 역량 쑥쑥

오종한·김두식·박교선(왼쪽부터) 법무법인 세종 대표 변호사가 24일 서울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꾸준한 성장세로 법조시장 2위에 오른다는 의지를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호재기자.오종한·김두식·박교선(왼쪽부터) 법무법인 세종 대표 변호사가 24일 서울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꾸준한 성장세로 법조시장 2위에 오른다는 의지를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호재기자.




법무법인 세종이 법조시장에 첫 출사표를 던진 건 지난 1983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한국 증권법 1호 박사였던 판사 출신 신영무 변호사가 김두식·하죽봉·최승민 변호사와 의기투합해 설립한 세종합동법률사무소가 모체다. 당시만해도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김장앤리(현 양헌) 등 2~3개가량 로펌이 설립·운영되고 있었지만, 이들처럼 ‘젊은 피’가 전면에 나서는 건 처음이었다.




세종이 설립 초기 집중한 건 금융·증권업무였다. 단 4명에서 시작, 변호사 507명(2022년 말 기준)의 대형 법무법인(로펌)으로 거듭나기까지 두 번의 성장 계기가 있었다. 금융과 증권 관련으로는 둘째라면 서러웠던 세종은 대부분의 국내외 인수합병(M&A) 자문 등에 관여했다. 이 같은 역량을 갖추는데는 1989년께 국내 자본시장 개방으로 해외수익증권이 발행되기 시작했을 때의 업무가 도움이 됐다. 당시 영국 로펌과 함께 일하는상황에서 컴퓨터가 없어 팩스로 자료를 주고 받아야 했고, 시차때문에 15~20명의 변호사가 거의 24시간 내내 업무에 매달려야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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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세종 대표변호사는 “당시에는 한 달에 359시간을 일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그야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던 시기”라며 “퇴근하고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할 정도였지만 돌이켜보면 사무실이 커가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과 일하다보니 업무 환경이 현대화되고 서구화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IMF 시절 업무 경험은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밑거름이 됐다. 여기에 타 로펌들과 합병도 세종이 종합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로펌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2001년에는 고등법원 판사 등 고위 법관 출신들이 주를 이루던 열린합동법률사무소와 합병해 송무 역량이 업그레이드 됐다. 로펌 사이 합병은 세종·열린합동법률사무소가 최초였다.

김 대표 변호사는 “합병 때 내부에서 송무를 담당했던 일부 저연차 변호사들이 반대하며 회사를 떠나갔었다”며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2~3년 정도 지나니 차원이 다른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교선 세종 대표변호사는 “이전까지 자문 업무가 주축이고 송무가 보조적인 일을 담당했다면, 합병 후에는 고객들도 중요 소송을 믿고 맡기는 등 변화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세종은 2010년도에는 부동산 특화 로펌이던 에버그린과 합병하며 대형 로펌으로써 입지를 굳혔다. 김 대표 변호사는 “로펌과의 합병은 외연 확장에 크게 도움이 됐다”며 “지금도 세종의 부동산 컨설팅 역량은 국내에서 최고"라고 강조했다.


천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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