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모순적인 정책으로 인해 통신시장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세대(5G) 이동통신 중간요금제의 경우 통신 3사 이용자의 선택권이 늘고 청년·어르신들이 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알뜰폰(MVNO) 요금과 격차가 줄며 알뜰폰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통신 3사 자회사의 알뜰폰 점유율을 제한하겠다는 정책도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중소 알뜰폰보다 풍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저렴한 요금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통신 3사 자회사의 알뜰폰 이용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통신비 인하와 소비자 후생 증대라는 정책 목표와도 배치된다. 알뜰폰을 활성화하려면 중소 업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정책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SK텔레콤이 23일 내놓은 5G 신규 요금제 중 만 34세 이하 청년 전용 요금제는 기존보다 한 단계 저렴한 요금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온라인 전용 자급제 요금인 ‘0청년 다이렉트 42’는 월 4만2000원에 36GB(기가바이트)와 무제한 통화를 제공한다. 현재 알뜰폰 5G 30GB·통화무제한급 요금제는 KT엠모바일이 월 3만7400원, U+모바일이 3만7800원, 밸류컴이 4만4000원이다. KB리브엠은 월 300분 통화에 4만4500원 요금제를 판매 중이다.
통신사 자회사인 KT엠모바일과 U+모바일을 제외한 알뜰폰 요금이 SK텔레콤이 새로 내놓은 청년요금제 상품 보다 비싸다. 데이터 제공량 차이와 멤버십, 청년요금제의 영화·커피·로밍 할인 등을 감안하면 자회사 알뜰폰도 매력을 잃는다. 아울러 통신사 자회사 요금이 일반 알뜰폰보다 확연히 저렴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월 4만2000원인 SK텔레콤 24GB 온라인 중간요금제를 알뜰폰에서 이용할 경우 SK텔레콤 자회사인 SK세븐모바일은 3만7400원이지만 프리티는 3만9600원, 이야기모바일은 4만4000원이다. 중소 알뜰폰은 SK텔레콤 요금제에 비해 가격 차이가 미미하거나 도리어 비싸다.
이같은 상황은 통신 3사 알뜰폰 자회사가 공격적인 가격 정책과 마케팅으로 가입자 유치 경쟁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알뜰폰 1위인 KT엠모바일은 2020년까지, 2위인 미디어로그는 2021년까지 적자를 지속해왔다. 반면 중소 알뜰폰은 대부분 흑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전체 알뜰폰 업체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22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장 점유율 1% 이상인 사업자 중 적자를 낸 곳은 22개 업체 중 7곳에 불과했고, 중소 알뜰폰 중에서는 에넥스텔레콤만 5년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신사 자회사들이 적자를 내면서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알뜰폰 시장을 키우고 중소 업체들은 별다른 투자 없이 도매로 받은 저렴한 통신망을 재판매해 이익을 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런 시장 구조에서 정부는 통신 3사 자회사 알뜰폰 점유율을 50% 이내로 제한하는 정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지난 10일 “통신사 자회사의 점유율 제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와 소비자단체들은 통신사 자회사 알뜰폰 점유율 제한의 실효성이 없고, 소비자 선택권만 제한한다고 비판한다. 현재 알뜰폰 통신 3사 자회사 점유율은 50% 내외로 ‘점유율 50% 제한’은 큰 의미가 없다. 휴대전화 회선(핸드셋)으로 한정하면 통신3사 자회사 알뜰폰 점유율은 55%선으로, 이를 끌어내릴 수는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다 저렴하고 서비스도 좋은 통신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 정부는 통신 시장을 과점 체제로 간주하고 경쟁을 촉진시켜 소비자 편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정책 방향을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통신 3사의 요금을 낮춰 알뜰폰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통신사 자회사 알뜰폰 점유율을 제한해 시장 성장과 통신 3사 간 경쟁을 막는 꼴이다.
근본적인 해법은 중소 알뜰폰 경쟁력 강화다. 중소 알뜰폰 서비스·가격이 통신사 자회사와 경쟁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지만 사업자 난립으로 서비스 질과 이미지가 되레 악화하고 있다. 현재 등록된 알뜰폰 사업자는 70여 개에 달한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B2C 영업을 하는 곳은 40여 개로, 모기업이 대부업·환전소·다단계 업체인 곳도 다수다. 대표이사가 대포폰 판매로 실형을 살아 폐업한 경우도 있다. 영세 사업자가 다수다 보니 최근 발생한 여유텔레콤 사례처럼 개인정보 유출 사고도 끊이질 않는다. 이에 정부가 알뜰폰 사업자 간 인수합병(M&A) 활성화를 꾀하고 있지만 별다른 투자 없이도 흑자를 내는 중소 업체들로서는 굳이 M&A로 덩치를 키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초 경쟁력 있는 중소 사업자에게만 허가를 내줬어야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며 “통신3사 요금 인하와 알뜰폰 시장 확대, 중소 사업자 살리기라는 모순되는 목표를 모두 잡을 수 없는 만큼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확실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