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동향

[단독]지연되는 연금개혁…인구추계 주기 당겨 “전략 다시짠다”

◆ 5년→2년 단축해 올해 조사

3년째 '인구 데드크로스' 급변

연금소진 등 빨라져 대응 필요





정부가 5년마다 진행해온 장래인구추계 주기를 2년으로 단축해 올해 조사를 실시한다. 합계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인 0.78명까지 곤두박질치자 정부가 보다 정교한 저출산 대책을 위해 인구 전망 통계의 정확성 제고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에 맞춰 정확한 통계를 기반으로 한 정부의 연금 개혁 작업도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통계청은 최근 인구추계 모형과 방법론 개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토대로 늦어도 올해 말 장래인구추계 조사 결과를 내놓고 인구 전략과 연금 개혁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장래인구추계는 연금이나 중장기 재정 정책에 활용할 목적으로 법에 따라 5년 주기로 이뤄져왔다. 인구총조사 결과와 인구변동요인(출생·사망·국제이동) 추이 등을 반영해 향후 50년의 장래인구를 전망한다. 과거에도 조사 주기를 단축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2년 만의 추계는 출산율이 급락했던 2019년 특별추계를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가 장래인구추계를 앞당겨 실시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증가와 역대 최저치를 경신한 출산율 등 인구 급변동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출생아는 24만 9000명으로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연간 25만 명을 밑돌았다. 반면 사망자 수 증가에 따른 인구 자연감소는 12만 3800명을 기록해 3년째 ‘인구 데드크로스’를 이어가고 있다. 최악 시나리오로 추계된 감소 전망치(10만 6000명)보다도 인구절벽이 가팔라진 상황이다.

문제는 저출산·고령화로 연금 소진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시산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 국민연금의 기금 소진 시기는 2055년으로 제4차 재정계산 당시보다 2년이나 앞당겨졌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연금 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수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지 못하면 연금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정확한 통계와 함께 인구 변동이 즉각 보험료율 등에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병행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노년부양비' 5년새 11% 격차…"현실 반영한 정확한 통계 시급"


정부가 장래인구추계를 2년 만에 다시 내놓기로 한 것은 인구구조가 기존 전망치보다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인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설상가상으로 2019년 11월부터는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지르면서 인구는 39개월째 계속 줄어들고 있다. 예상보다 가파른 인구 감소 폭에 연금과 중장기 재정계획 수립 차질이 불가피해지자 정부는 인구 추계 주기를 단축해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전해진다. ★본지 3월 21일자 1·3면 참조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2015~2065년)과 2021년(2020~2070년) 기준 장래 노년 부양비 차이는 2020년 21.8명으로 똑같았지만 이후 점차 격차가 벌어지다 2065년에는 각각 88.6명과 98.2명으로 10여 명(11%)을 기록했다. 노년 부양비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당 고령 인구(65세 이상)의 비율을 의미한다. 출산율이 줄어드는 대신 고령화는 빨라지다 보니 추세선이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셈이다.

출산율 꼴찌인데 고령화는 '1위'
재정계산때마다 인구지표 급변동


실제 출산율은 1974년(3.77명) 처음 3명대를 기록한 뒤 1977년(2.99명) 2명대에 이어 1984년(1.74명)에는 1명대로 떨어졌다. 이후 2018년(0.98명)에는 0명대로 내려선 뒤 계속 하락하다 지난해에는 0.7명대까지 추락했다. 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되는데 한국은 그보다 한참 낮아 OECD 국가들 사이에서 8년째 꼴찌를 기록 중이다.

이와는 반대로 고령화 속도는 치솟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70년 한국의 노년 부양비는 100.6명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70년 노년 부양비가 100명을 초과하는 나라는 한국과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작은 섬나라 생바르텔레미(100.1명) 등 두 국가뿐이다.

이처럼 보험료를 납부하는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고 연금을 수령하는 고령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연금은 더 빨리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2016년 장례인구추계를 기반으로 추계된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국민연금 소진 시기는 2057년이었지만 5년 뒤인 2021년 5차 재정계산에서는 2055년으로 2년이나 단축됐다. 이번 추계에서는 그 기간이 더 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총선 표 궁리에 여야 개혁 공회전
소득·자산 등 추계 정확도 높여
연금제도 형평성 논란 선제대응


결국 미래 세대의 경제적 부담 증가가 뻔한 상황이지만 연금 개혁을 짊어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여야 공전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당초 다음 달로 예정된 국민연금 개혁안 발표도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민간자문위원회에서 보험료 인상 폭(9%→15%)이 거론되자 보험료가 아닌 구조 개혁부터 하자며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린 탓이다. 4차 재정계산으로만 봐도 국민연금이 완전히 고갈된 후인 2060년에 미래 세대가 부담할 연금 보험료율(부과 방식 비용률)은 28.8%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상태라면 부담이 눈덩이로 커지는데도 정치권은 보험요율과 소득대체율 등 모수 개혁 방안 마련을 포기하고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 표심 관리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결국 정치권의 각성과 이해관계자들의 설득을 위해서는 정확한 인구 추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정확한 통계가 정치권의 의지와 결부돼야 연금 개혁의 성공 조건이 될 수 있다”며 “통계는 연금의 기여분과 급여 수준을 결정할 때도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소득과 자산이 부정확하게 측정되면 연금제도는 형평성과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가 필수라는 얘기다. 조 교수는 “5년마다 해온 장래인구 변화 추계를 2년에 한 번씩 하면서 정확한 통계가 갖춰지게 됐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앞서 윤 대통령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장래인구추계뿐 아니라 정부 부처별로 인구 위기 대응의 부문별 후속 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월간지 최신호를 통해 “다양한 데이터에 기반해 인구 변화를 전망하고 정책 효과성을 분석해 증거 기반 정책을 수립·추진하기 위한 평가분석센터를 설치해야 한다”며 “국책연구기관이나 대학 등 관련 기관과의 협력과 부처 간 조정·조율 기능을 강화하는 거버넌스에 필요한 법령 개정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23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욱 기자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23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욱 기자


"보험료율·수급액 같이 올리면 연금개혁 안하겠다는 말"-윤석명 보건사회硏 연구위원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5%로 올리되 소득대체율(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도 40%에서 50%로 같이 올리자는 것은 사실상 연금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모두 올리자는 일부 주장에 대해 이같이 비판했다. 윤 위원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에 모두 참여하는 연금 전문가다. 그는 “최근 국회예산정책처 발표에 따르면 보험료율만 15%로 올리면 2093년 기금의 누적 적자는 3699조 원 줄어들지만 보험료율과 함께 소득대체율도 50%로 올리면 적자 규모가 283조 원 줄어드는 데 그친다”며 “가파른 고령화로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응급조치가 필요한데 소득대체율까지 올리면 그 효과가 뚝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대 여명이 늘어나면 한 해 국민연금 수급액을 줄이는 ‘핀란드식 자동 안정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 위원은 “핀란드는 한 사람이 평생 받게 되는 연금 총액은 똑같지만 기대 여명이 길어지면 한 해 연금 지급액을 줄이는 재정 안정장치를 운용 중”이라며 “연금 총액이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을 설득할 명분이 있고 연금 재정 악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역시 21일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장치를)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며 자동 안정장치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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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모수 개혁 논의에 사실상 손을 떼며 개혁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미적립 부채 등 현재 연금 상황을 보여주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동력을 되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적립 부채란 국민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연금액 중 현재 시점에서 부족한 금액으로, 현 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빚이다. 그는 “2006년 정부가 ‘미적립 부채가 하루에 800억 원씩 쌓이고 있다’고 밝히자 연금 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됐다”며 “이것이 이듬해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추는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지금은 미적립 부채 규모를 밝히면 연금제도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우고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정부가 정보를 숨기고 있다”며 “투명한 정보 공개가 연금 개혁의 불쏘시개가 됐던 역사를 되짚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세종=송종호 기자·세종=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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