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특정 브랜드의 신제품 출시나 매출 진작을 위한 ‘반짝 홍보’ 수단으로 여겨졌던 ‘팝업 스토어’가 최근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백화점의 주력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건 아닌 경험을 소비하며 이를 인증하는 고객이 많아지고, ‘내가 끌리는 재화’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경향이 확산하자 이에 발맞춘 모객(募客) 수단으로 경험과 재미, 여기에 ‘한정된 기간에만 만날 수 있다’는 희소성까지 앞세운 팝업 스토어를 띄우고 나선 것이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더현대서울은 최근 오픈 2주년을 기념해 ‘팝업 스토어 리포트’를 발간했다. 지난해 오픈 1주년을 기념해 처음 ‘디지털 리포트’ 형태로 점포의 1년 운영 내용을 정리한 데 이은 두 번째 보고서로 올해는 주제를 ‘팝업 스토어’로 좁혀 성과를 집중 조명했다.
팝업전용 공간 여럿 둬 2년간 321개 운영
대형백화점의 특정 점포가 팝업 스토어를 주제로 보고서를 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더현대서울이 이 부문에 있어 그동안 공을 들이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얻은 성과를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더현대서울은 지난 2021년 2월 ‘유통 무덤’이라 불리던 여의도에 입성하며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없이, 기존 백화점 문법과는 다른 운영 방식을 구사하며 눈길을 끌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적극적인 팝업 활용’이다. 여러 층, 그리고 같은 층 내에서도 여러 개의 행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여는 것은 물론, 내용도 고급 브랜드부터 K팝,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2월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이곳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는 총 321개로 이틀에 한 개꼴이었으며 총 운영 기간만 6239일이었다. 다녀간 사람은 460만 명으로 서울 시민 두 명 중 한 명이 방문한 것과 같은 수치다.
더현대 서울은 MZ 세대 전문관인 지하 2층 ‘크레이티브 그라운드’에 팝업 전용 공간 세 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5층 광장인 사운즈포레스트도 대형 팝업 행사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2년간 팝업을 연 브랜드 수는 패션·뷰티가 210개로 가장 많았으나 방문객 수는 아트·컬처가 132만 명, 패션·뷰티가 142만 명으로 비슷했다. 현대백화점(069960)은 “백화점이 문화와 예술을 체험하는 놀이터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했다”며 “새로운 공간의 문법이 탄생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패션·車·증권·K팝·트로트…파격 운영 고객↑
의외의 만남도 많았다. NH투자증권, 크립토포뮬러 대체불가능토큰(NFT), 현대차 아이오닉6, 플레이스테이션 등 금융, 가전, 게임 같이 백화점과는 다소 거리 먼 분야의 팝업 스토어부터 최근에는 인기 유튜버 ‘다나카’와 트로트 가수 ‘영탁’의 팝업 행사가 열려 성황을 이뤘다. 패션 의류·잡화 등 굿즈를 판매하고 포토존을 운영한 다나카 팝업에는 2030을 중심으로 열흘간 4만 명 이상이 다녀갔고, 영탁의 작업 공간과 무대 의상, 애장품을 전시하며 굿즈를 판매한 ‘영탁’s 스튜디오’ 역시 지방에서 관광 버스를 타고 방문한 팬들이 몰리며 오픈 첫 주 주말(2월 25~26일)에만 매출 3억 원을 달성했다.
일본 만화 ‘슬램덩크’ 굿즈, BTS 레고, K팝 아이돌 기념품 등 팝업이 잇따라 인기를 끌며 지난 2년간 ‘더현대서울’의 소셜미디어 언급량은 33만 8266건을 기록했다. 운영 초기만 해도 “어린 애들이 와서 사진만 찍지 뭘 사겠느냐”, “팝업 10개, 20개 여는 것보다 에루샤 하나 파는 게 낫다”는 시선도 있었으나 더현대서울 매출은 2021년 6637억 원에서 2022년 9509억 원으로 뛰며 ‘최단 기간 1조 클럽 입성’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신세계(004170)강남, 롯데잠실에비뉴엘도 럭셔리 팝업 공간
더현대서울이 ‘파격적인 팝업 운영’으로 모객과 매출 증대 효과를 봤다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국내 매출 1위’, ‘전 세계 백화점 단일 점포 기준 매출 1위’라는 명성에 걸맞게 ‘럭셔리’에 방점을 찍고 팝업을 강화하고 있다. 강남점은 지난 2021년 1층을 리뉴얼하면서 중앙 로비 공간 ‘더 스테이지’를 명품 팝업 공간으로 꾸몄다. 매출 1위 점포 안에서도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1층 한복판을 브랜드 홍보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 분기 팝업 스토어 신청은 일찌감치 마감된다. 그동안 루이 비통, 샤넬, 보테가 베네타, 디올, 로저 비비에 등이 이곳에서 행사를 진행했으며 이 때 국내 최초 및 신세계 단독 상품을 선보여 더욱 화제를 모았다. 2~3주 운영하며 약 한 달 단위로 팝업 브랜드가 교체되는데, 이 같은 운영 전략은 새로운 아이템과 ‘신 명품’에 대한 수요가 큰 젊은 소비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신세계 강남의 전체 매출 중 33.5%가 2030 고객에게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도 최근 잠실 에비뉴엘 지하 1층 광장에 있던 대형 왕관 조형물을 치우고, 그 자리에 ‘더 크라운’이라는 팝업 공간을 조성했다. 롯데백화점은 앞으로 이곳을 ‘럭셔리 팝업 전용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소비 둔화 우려 속에 백화점이 (저렴한) 가격으로 소구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며 “웬만한 브랜드는 온라인에서도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고, 백화점에서의 소비를 대체할 수 있는 채널이 많은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경험하고 얻을 수 있는 콘텐츠’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