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며 지난 내 삶을 돌아보고, 그리고 또 앞으로의 삶을 기대하며 그려낸 글과 그림이에요.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꾸미기보다는 모든 면에서 솔직하려고 했죠. 조금 쑥스럽기도 했지만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 더 강해졌던 작업이었습니다.”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만난 이경옥(84) 동구바이오제약 회장은 자서전 ‘경옥이 그림일기’를 펴낸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출간된 ‘경옥이 그림일기’를 통해 그동안 살아온 삶과 가족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 회장은 “인생 첫 책이다 보니 주변의 평가가 어떨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책을 보면서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거나 ‘보고 울었다’는 격려를 많이 받았다”며 “새벽까지 그림을 그린 날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책의 절반을 직접 그린 그림으로 채웠지만 정작 이 회장이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건 일흔이 훌쩍 넘어서다. 전업주부였던 이 회장은 남편인 고암(高岩) 조동섭 선대회장을 물심양면 보필하다가 선대회장이 1997년 별세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는 등 바쁘게 살았다. 2005년 아들인 조용준 동구바이오제약 대표가 경영권을 물려받아 2017년 단독 체제로 전환한 후에야 비로소 여유를 찾았고 자신이 좋아하던 일들을 떠올려보게 됐다.
“교회에서 초등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기에 나도 배우면 안 되느냐며 같이 앉아 그렸죠. 처음에는 틀려도 티가 안 나는 여름 경치, 가을 풍경을 그리다가 해바라기·아네모네 같은 꽃도 한 번 그려보고…. 다음은 정물화, 그다음은 인물화, 신나게 그렸어요.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게 소문이 났는지 인사동 갤러리의 관장님이 크로키를 하는데 같이하겠느냐 권유하고, 또 ‘어반 스케치’ 할 건데 어떠냐 물어보고…. 그때 나는 그림 그린다고 하면 무조건 붙여 달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수년간 몰두한 그림은 ‘가끔 내가 봐도 참 잘 그렸다 싶더라’는 수준까지 올라왔고 주변에서도 아까우니 전시를 하자거나 책을 한 번 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왕 하려면 실력을 더 갖추고 싶으니 미수(米壽·88세) 때나 해보지 싶었는데 그때 누가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고 그러냐며 재촉을 했다. ‘그렇지, 그때 내가 어떻게 될지 알고’라는 생각이 들어 한 번 해보자며 곧장 출간 계획을 세웠다.
이후로는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초등학생이 방학 숙제를 하듯 하나씩 꼬박꼬박 그려나갔다’는 그림 작업을 위해 이 회장은 많은 곳을 찾았다. 어릴 적 살던 월미도 앞바다를 찾았고 학창 시절 통학하던 길의 홍예문을 들렀다.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법성포 상사화 군락지를 찾았고 앞으로의 날들을 고민하기 위해 서오릉으로 향했다. 그림 한 장을 완성할 때마다 지난 추억들이 선명해졌고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추억이 쌓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기상 악화, 멀미 등으로 독도 입도에 세 번이나 실패했는데 마침내 찾은 네 번째 방문에서 용오름을 만났다”며 “고생해서 들어왔다고 이런 선물을 주나 싶어 기뻤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이 회장은 앞으로도 배움과 도전에 대한 열정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배움이란 내 자신의 능력을 더 키우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다방면으로 공부하며 실력을 갖춰두면 결국 필요할 때 쓰임을 받게 된다”며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내 인생을 노년이라 하기에는 아직 아깝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회사 경영자로 남긴 기록도 한 번 모아보고 싶기는 하다”고 말했다.
“이경옥 개인으로서의 기록은 남겼으니 회장으로서 썼던 경영의 기록도 남긴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요. 엄마의 마음으로 했던 일들이 ‘마음 경영’으로 이름 붙었는데 한 번 정리해보고 싶은 거죠. 물론 이번에는 여유를 가지고 준비해 더 숙련된, 더 질 높은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그래야 내 원이 풀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