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e학습터·백신예약 툭하면 '먹통'…대기업이 구원투수로 수습

[수명 다한 공공SW 규제]

◆ 힘받는 공공 IT시장 개방

10년새 대기업 비중 20%로 급감

중소 SI 개발 시스템 장애 빈번

LG CNS 등 대기업에 해결 의존

재난상황서 역량차 극명히 노출

공공기관 제도개선 목소리 커져





2021년 7월 시작된 53세 이상의 코로나19 백신 사전예약이 접속 장애로 홍역을 치렀다. 중소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이 개발한 예약 시스템은 30만 건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1000만 명이 몰리며 서버가 연이어 다운되는 사태를 겪었다. 결국 질병관리청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네이버·카카오·LG CNS 등 대기업을 뒤늦게 투입시켜 문제를 해결했다. LG CNS 최적화팀은 나흘 만에 동시 처리 가능 건수를 200만 건으로 7배가량 늘려 병목현상을 90% 이상 해결했다. 대기업이 시스템을 개선한 덕분에 8월에 실시된 18~49세 백신 예약은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중소·중견 SI들이 개발해 운영하던 공공 소프트웨어(SW) 시스템에 대기업이 뒤늦게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2020년 3월에는 교육방송(EBS)의 온라인 수업 접속 장애와 17개 시도교육청이 운영하는 공공 학습 관리 시스템 ‘e학습터’의 네트워크 과부화 사태가 빚어졌으며 지난해 9월에는 보건복지부의 차세대 사회보장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해 시스템을 구축한 중소기업의 요청으로 LG CNS가 긴급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촌극이 벌어졌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SW 개발 역량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과기정통부가 긴급 발주가 필요한 공공 SW 사업에 패스트트랙을 도입해 기존 45일이던 대기업 참여 심의 기간을 15일로 줄이기도 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SW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등 긴급사태로 대국민 서비스가 차질을 빚을 때 15일은 턱없이 긴 시간”이라며 “애초에 전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대형 사업은 시작부터 역량 있는 사업자들에 맡겨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3년 SW산업진흥법 개정으로 대기업의 공공 SW 사업 참여가 제한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과거 80%에 육박하던 대기업의 공공 SW 주 사업자 비중은 20% 선으로 하락했다.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당초 목표는 달성됐지만 공공기관 사이트에서 연이어 먹통 사태가 발생하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치로 내건 디지털플랫폼정부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공공기관의 SW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대기업에 사업을 맡기고 싶다는 공공기관의 요구가 커지면서 정부도 대기업 참여 제한 완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중소 SI·SW기업협의회가 지난 10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창립 총회를 개최하고 기념 촬영했다.사진제공=중소 SI·SW기업협의회중소 SI·SW기업협의회가 지난 10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창립 총회를 개최하고 기념 촬영했다.사진제공=중소 SI·SW기업협의회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공공 SW 사업에서 대기업이 주 사업자로 선정된 비중은 2010년 76.2%에서 2020년 21.8%로 줄었다. 이조차도 2016년 7%를 기록한 후 대기업 참여 제한 예외 항목이 늘어나며 증가한 것이다. 현행법상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공공 SW 사업은 국가안보, 인공지능(AI)·빅데이터, 긴급 장애 대응, 이미 개발한 SW 서비스 사용 등으로 국한된다. 이 경우에도 중소·중견기업과 컨소시엄을 이루지 않으면 사실상 입찰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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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참여제한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도 SW 분야에서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함께 공공 사업을 벌이곤 했다. 그러나 대기업이 사업의 큰 틀을 주도하며 중소·중견 하청 업체와 작업을 진행하던 과거와 달리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는 현재는 각 사업자가 맡은 영역이 분리된다. 사업이 조각난 채로 진행되고 역량이 부족한 기업이 설계한 부분에서 문제가 잦다는 평가다.

개발자의 몸값이 폭등한 후에는 문제가 더욱 커졌다. 중소 SI에서 인력 이탈이 끊이지 않아 사업 연속성마저 떨어진 탓이다. 한 SI 대기업 관계자는 “개발을 주도하는 업체가 없어 사업 단계마다 품질이 다르고 엉뚱한 결과물을 억지로 조합한 ‘키메라’ 같은 SW가 나온다”며 “개발 속도도 차이가 나 납기가 늦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중소 SW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기업 참여 제한을 고수하고 있지만 타 부처들은 대기업에 사업을 맡기는 것을 선호한다. 한 중앙부처 관계자는 “디지털플랫폼정부 추진으로 대규모 공공 SW 발주와 공공 시스템 클라우드화가 예정돼 있다”며 “발주처 입장에서는 같은 금액이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공공 SW 사업 참여 제한으로 중소·중견기업이 대거 성장한 만큼 이제는 ‘보호망’을 해제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따르면 2012년 ‘매출 300억 원 클럽’에 가입한 SW 기업이 144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71개로 늘었다. 이들 기업의 총매출도 28조 8889억 원에서 112조 5269억 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연 매출 300억~1000억 원인 기업이 333개로 2012년 99개에서 3배 이상 많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애초 국내 SW 산업이 공공·내부거래 위주로 성장했다는 점이 기형적”이라며 “게임을 제외한 SW 산업 전반이 내수 시장에 안주하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사업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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