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얼룩말 '세로'의 동물원 탈출 소동을 계기로 동물을 가두어 놓는 방식의 동물원 환경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드는 가운데 섣부른 동물 방사나 동물원 폐지 주장은 위험하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6일 서울어린이대공원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수컷 그랜트 얼룩말 '세로'가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서울 시내를 활보하다 붙잡혀 3시간여만에 돌아왔다.
이후 세로가 재작년과 작년에 부모를 잇달아 잃고 홀로 지내면서 급격히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대공원 측은 재발 방지를 위해 울타리 소재를 목재에서 철제로 바꾸고 높이도 더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래 암컷 얼룩말과의 합사도 진행하기로 했다.
“동물원 우리, 사람이라면 감옥 가두는 것”
이를 두고 초원을 달려야 할 얼룩말이 다시 좁은 동물원에 갇히게 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어졌다.
대공원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에는 얼룩말 탈출 소동 이후 동물원 환경을 비판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작성자는 "도심 한복판으로 탈출한 얼룩말이 이상한 게 아니다. 동물원이라는 것 자체가 동물권 개념이 없던 시대의 잔재"라며 "환경을 개선하거나 해외 생츄어리(야생동물 보호시설)에 보내야 한다"고 썼다.
다른 작성자들도 "동물원에 동물 산책로를 마련하라"거나 "세로가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만이라도 얼룩말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한 네티즌은 관련 인터넷 기사에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을 우리에 가둬서 키우는 건 사람으로 치면 평생 감옥에 가둬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댓글을 달았다.
매일 어린이대공원을 이용한다는 황모씨도 "세로가 여자친구를 만나 제2·3의 세로를 만드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다"며 "큰 동물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제 어린이대공원 안 동물원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공원 동물원을 갈 때마다 동물들이 정형 행동(우리에 갇혀 사는 동물이 목적 없이 반복적으로 하는 이상행동)을 보이는 듯해 서울시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고 했다.
동물들이 행동 반경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더 이상 동물들을 들여오지 않는 방식으로 동물원을 순차적으로 3D 형태의 체험관이나 식물원으로 바꿔 달라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2018년 탈출 퓨마 ‘뽀롱이’ 사살, 그 후는?
동물원 환경을 개선하거나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동물권 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8년 대전 오월드 사육장에서 탈출한 퓨마 '뽀롱이'가 사살된 일을 계기로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퓨마 '뽀롱이'는 사육장 청소를 마친 직원이 문을 잠그지 않은 틈을 타 탈출했다. 퓨마를 발견한 오월드 관계자가 마취총을 쐈으나 포획에 실패하면서 당시 시설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라 사살됐다.
섣불리 동물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거나 동물원을 없애라는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란 반론도 있다.
신남식 서울대 수의과대학 명예교수는 "동물원에서 잘 크고 있는 동물이 야생으로 가면 먹이를 찾거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등을 모두 새로 배워야 해 동물로서는 매우 괴롭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안전이 보장된 울타리 높이를 갖추고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지켜주는 게 동물원 동물들의 처우를 위한 일"이라며 "동물원은 교육적·정서적 측면의 기여도 크다"고 말했다.
다만 곰 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인 최태규 수의사는 지난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동물원이 실질적 역할을 하는 교육이나 보전, 연구 같은 것들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며 “대중의 눈요기를 위해 야생동물을 가두는 것이 교육적이지 않다는 주장에 점점 많은 분이 동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전이나 연구도 굉장히 전문적이고 폐쇄적인 분야라 얼마나 정당성을 갖는지 대중들이 판단하기 어렵다"며 "장차 정당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동물원을 장기적으로 없애는 것도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