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는 중국의 ‘기술 허브로’로 불리는 선전에서 기술 자립의 첨병 역할을 하는 대표 기업이다. 최근 몇 년 간 미국 제재 여파로 실적 악화를 겪었던 화웨이는 지난달 31일 선전 본사에서 진행한 2022년 실적 발표회 곳곳에 매화 장식을 넣었다. 미국 제재를 극복하는 화웨이의 노력이 매화를 닮았다는 게 창업자 런정페이의 딸인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채무책임자(CFO)의 설명이다. 특히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하며 독자 기술 개발에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실적 발표회 배경 화면을 포함해 만찬 메뉴 등 행사장 곳곳이 매화로 가득 찼다.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는 중국에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의지를 상징한다. 미국을 향해 더 큰 압박에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화웨이가 중국을 대표해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쉬즈진 순환회장은 “매화는 엄동설한을 버텨낸 뒤 향기를 풍긴다”며 “화웨이가 직면한 도전과 압박이 거대하지만 성장의 기회가 남아 있고 산업 회복에 대한 신뢰가 있으며 과감한 투자를 단행할 패기도 있다”고 강조했다.
멍 CFO는 실적 발표 말미에 “눈이 내린 뒤 매화꽃이 가지를 짓누르고 있지만 봄이 다가와 벌써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雪後疏梅正壓枝 春來朝日已暉暉)”며 “압박도 있지만 자신감은 더 크다(有壓力 更有信心)”고 강조했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수출 통제 등 전방위 압박이 전시 상태였다면 2022년은 이를 이겨내고 정상화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2년은 화웨이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해”라며 “미국의 규제는 이제 우리의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현실)’이며 우리는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화웨이는 2022년 매출액이 6423억 위안(약 121조 8250억 원)으로 전년 대비 0.9%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국 수출 통제의 직격탄을 맞은 2021년에는 전년 대비 28.6% 감소했는데 1년 만에 반등한 것이다. 순이익은 전년 대비 68.7% 급감한 356억 위안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하락하고 R&D 투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화웨이 측의 설명이다.
화웨이는 지난해 R&D에 총 1615억 위안(약 30조 6200억 원)을 쏟아부었다. 전체 매출의 25.1%로 투자 규모나 금액 모두 사상 최대치다. 화웨이의 매출 대비 R&D 비율은 2020년 15.9%, 2021년 22.4% 등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10년간 R&D 투자 금액은 9773억 위안(약 186조 2400억 원)에 이른다. 전 직원의 55.4%인 11만 4000여 명이 R&D 인력이다.
이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R&D 투자는 전년 대비 10.3% 증가한 24조 929억 원으로 매출액(별도 기준) 대비 11.8%를 차지했다.
화웨이가 미국의 압박에 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는 중국의 기술 자립을 실현하는 선봉장을 맡고 있는 셈이다. 런 창업자는 올 2월 한 세미나에서 최근 3년간 1만 3000개의 부품을 중국산으로 교체하고 회로 기판 4000여 개를 재설계했다고 밝혔다. 또 자체 기술로 14나노급 반도체 설계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 압박에도 R&D에 매진한 결과 기술 독립에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한편 멍 CFO는 1일부터 6개월간의 순환회장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