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맞벌이 부부 난리인데…"직장어린이집, 더 설치할 곳 없다" 예산 ‘싹둑'

[직장어린이집 올 예산 60% 감축]

의무 이행률 목표치 넘어섰지만

대기업 한정돼 중기직원은 소외

설치기준 20년째 '500인 이상'

19대 국회부터 완화 주장 나와

비용 부담 등 우려에 신중론도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엄마와 함께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엄마와 함께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올해 직장어린이집 설치 지원사업 예산을 지난해보다 60%나 줄인 것은 사실상 대기업 지원사업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이 사업은 전체 기업의 90%가 넘는 중소기업과 맞벌이 부부를 중심으로 직장어린이집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담기 어렵다는 지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고용부 입장에서는 직장어린이집을 마냥 늘리기 어려운 정책적 고민도 있다. 국회가 나서 직장어린이집을 늘릴 수 있는 대안 마련을 모색하고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3일 고용부에 따르면 직장어린이집 지원사업은 예산 감축을 결정할 만큼 이미 사업 목표치를 뛰어넘었다. 이 사업의 성과는 사실상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사업장의 이행률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행률은 2021년 90.9%로 4년 연속 90%대를 기록했다. 정부의 여타 지원사업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고용부 입장에서는 나머지 10% 미설치 사업장을 위해 예산을 유지하거나 되레 증액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 셈이다. 사업은 한 사업주와 사업주 단체를 3억~20억 원까지 집중 지원하는 방식이다. 고용부는 올해 저출산 대책이 발표되기 전인 지난해 여름 사업 예산 계획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90%’는 일종의 착시 효과인 측면도 있다. 2021년 설치 의무 사업장은 1486곳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중 90.9%(1351곳)가 법적 의무를 이행했지만 당시 설치된 직장어린이집 수는 전국의 1016곳에 그쳤다. 게다가 의무 이행 사업장 335곳은 개별 어린이집과 계약을 맺은 위탁 보육 지원을 결정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체 어린이집 가운데 직장어린이집은 1291곳(미의무 사업장 포함)으로 전체 어린이집의 4.2%에 머물렀다. 2018년 1111곳에서 지난해까지 180곳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다. 국공립어린이집도 전체 어린이집 비중으로 보면 18.8%에 불과하다. 최 의원은 “부모 등 보호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국공립어린이집과 직장어린이집 확충을 통해 양육 부담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사업장으로 보면 직장어린이집은 더 부족하다. 직장어린이집 의무 사업장 1351곳은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 약 71만 1000곳(2020년 기준)과 비교하면 0.2% 수준에 불과하다. 맞벌이 부부들의 수요를 감당하기 부족하다는 것이다. 2021년 아이돌봄 플랫폼 ‘맘시터’ 운영사인 맘편한세상이 부모 회원 6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0%는 ‘갑작스러운 아이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답했다. 심지어 67%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 중 퇴사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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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사업장 기준이 사실상 대기업 지원 위주로 설계된 데 따른 예견된 결과다. 영유아보육법은 1991년 최초 의무 사업장 기준을 상시 여성근로자 500인 이상으로 정했다. 하지만 이후 기준 완화 속도가 현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느리다고 볼 수 있다. 기준 변화 추이를 보면 1995년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으로 넓혔고 2005년 현행 기준인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근로자 500인 이상으로 확대됐다. 20년 가까이 이 기준이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지속적으로 의무 사업장 기준을 낮추자는 요구를 이어왔다. 제19대 국회였던 2015년 근로자 300인 이상으로 낮추는 게 골자인 영유아보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개정안은 폐기됐다. 제20대 국회에서도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2020년 발의했다. 지난달에는 같은 당 설훈 의원이 기준을 상시 근로자 150명 이상까지 낮추는 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들 법안에 대한 반대도 만만찮다. 정부는 의무 사업장의 비용 부담을 걱정한다. 기준을 낮출수록 비용 부담을 걱정해야 할 기업이 늘어나는 구조다. 게다가 유치원 업계에서는 직장어린이집이 급격하게 늘어나면 보육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점도 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도 직장어린이집 기준 완화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고용부는 기존 직장어린이집의 인적 구성과 전반적인 충원율 하락을 볼 때 여러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존 직장어린이집도 지난해 충원율이 60%대로 10%포인트가량 하락하면서 운영에 대한 고민이 늘어난 상황”이라며 “기업마다 직원 성별 구성, 직장어린이집 유지 능력 등이 너무 달라 일률적인 직장어린이집 증가가 최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존 직장어린이집에 중소기업 근로자 참여를 늘리는 식의 추가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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