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유령+조승우’는 명불허전이었다. 13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초연은 더 거대해졌고, 조승우는 팬텀 그 자체였다. 여기에 웅장한 음악과 조명, 모든 것을 담아 내고도 남는 1700명 규모의 뮤지컬 전용 극장 ‘드림 씨어터’가 더해지면서 부산은 팬텀의 도시가 됐다.
지난달 30일 부산 드림시어터에서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은 19세기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마스크로 한쪽 얼굴을 가린 채 숨어 지내는 천재 음악가 팬텀(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귀족 청년 라울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뮤지컬 음악 작곡 1인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해롤드 프린스(연출) 등에 의해 1986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1억4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역작이다. 한국에서는 2001년 처음 개막했으며 7개월간 24만 명의 관객 을 동원한 바 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오페라의 유령’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어 공연은 총 2회 진행됐으며 이번이 세 번째다. 제작사는 최신 설비를 총동원 해 13년 만에 진행된 한국어 초연을 준비했다. 공연장 내 무대에서 커튼과 조명, 음향시설의 질을 좌우하는 배튼(음향, 조명을 위해 설치된 무대장치)은 총 58개로 국내 최대 규모 중 하나다. 임현철 드림시어터 기획운영팀 팀장은 “최소 550㎏에서 최대 750㎏의 막이 분당 100m 안팎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장비 규모”라며 “오리지널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8주간 설치에 몰입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시설 덕분에 관객은 1막 도입부 중 1톤(t) 샹들리에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신부터 압도 당한다.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이 작품을 명불허전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연출이다. 바닥에 널브러져 먼지 쌓인 천에 덮혀 있던 샹들리에는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는 장면에서 점차 천장을 향해 올라가는데, 직선이 아닌 VIP석 관객들이 앉은 자리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관객들의 머리 위를 거대한 샹들리에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 마치 4D 영화를 보듯 관객은 무대 위 배역과 함께 작품 속에 서서히 참여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최첨단 무대 시설이 갖춰져 있어도 배우의 연기가 따라오지 못하면 관객은 반응하지 않는다. 기자가 관람한 지난 1일 팬텀은 조승우였다. 조승우는 이번 팬텀 배우 4인방 중 유일한 성악 비전공자. 그간 그가 해 온 다른 뮤지컬과 달리 제목부터 ‘오페라’인 작품이지만 조승우는 자신 만의 색깔로 크리스틴을 향해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끔찍하게 사랑을 호소했다. 전통적인 성악 음색은 아니지만, 오히려 ‘유령’이라는 캐릭터에는 조승우의 창법이 더 어울렸다. 여기에 노래가 아닌 크리스틴을 향해 읊조리는 절절한 사랑의 대사는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쌓아 온 내공을 그대로 보여줬다. 웅장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보다 갈라진 작은 목소리로 크리스틴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더 관람객을 홀렸다. 조승우는 공연 후 제작사 에스앤코를 통해 “수많은 편견, 선입견과 싸우느라 홀로 지치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무대에서 지킨 것 같다”는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여기에 크리스틴 역을 맡은 손지수와 라울 역을 맡은 송원근의 사랑 연기는 팬텀의 질투와 분노, 좌절을 부르기에 충분히 풋풋하고 아름다웠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부산 공연은 6월 18일까지. 7월에는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