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이슈 리포트]디지털 뱅크런 현실화…'광속 도산' 막으려면 예금보호한도 올려야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美 SVB 파산과 韓 금융시장의 과제

위험관리 실패 SVB 이틀 채 안돼 파산

예금전액 보장 조치, 위기 확산은 차단

국내도 非은행권 PF 부실 가능성에

인터넷뱅킹 많은 탓, 뱅크런 우려 커

예금보호 23년째 5000만원 제자리

한도 높여 대량인출 위험도 낮춰야

은행엔 다양한 위기 시나리오 권고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도 신중 접근을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은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 가장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었던 데다 파산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채 이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SVB는 왜 파산한 걸까.

지난해 말 기준 약 275조 원의 자산을 보유한 SVB는 1983년 설립 이래 실리콘밸리 지역의 신생 기업 및 중견 테크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유동자금 사정이 악화된 기업들이 SVB에 예치한 운용 자금을 인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SVB는 연이은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매각했고 이로 인해 2조 4000억 원의 매각 손실을 입었다. 미 국채 가격이 그간의 금리 인상으로 하락한 것이다. 이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SVB가 증자 계획을 발표하자 SVB의 유동성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테크 기업들이 집중돼 있는 실리콘밸리 지역의 특성상 소셜미디어를 통해 SVB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급속히 전파됐고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한 예금 인출이 잇따르면서 SVB는 증자 발표 후 불과 이틀 만에 파산했다.

SVB 파산의 근본적인 이유는 위험 관리 실패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미 국채도 때에 따라 실패한 투자가 될 수 있다. 금리가 상승하면 새로 발행된 국채가 더 높은 금리를 보장하므로 이전에 발행된 국채의 가격은 하락한다. 금리 상승 국면에는 이 같은 위험 요인을 고려해 은행이 선제적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거나 유동성 높은 자산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실패한 SVB는 결국 손실을 감수하면서 보유 국채를 매각했고 이 매각 손실이 대중에 알려진 것이 SVB 파산의 단초가 됐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SVB의 유동성 우려 확산 및 예금 인출 러시에 디지털 기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과거 은행이 부실해지면 예금자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영업시간 전부터 은행에 달려가는 ‘뱅크런’이 발생했다. 하지만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SVB에 대한 우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예금자들은 모바일뱅킹을 통해 순식간에 예금을 인출했다. 이른바 ‘디지털 뱅크런’의 출현이다.

SVB 파산의 여파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으로 번졌다. 미국에서는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은 신기술·가상화폐·부동산 등과 관련성이 높은 중소형 은행들부터 예금이 급격히 빠져나갔다. 가상화폐 예금을 취급하는 시그니처은행이 SVB 파산 이틀 후 밀려드는 예금 인출 요구에 문을 닫았고 SVB와 같이 테크 기업들을 주 고객으로 둔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유럽에서는 연이은 투자 실패로 유동성 사정이 악화된 대형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가 위기에 처했으며 자금 조달이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도이체방크의 주가가 폭락했다.



이렇게 연이은 은행 파산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금융 불안 확산이 금융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 금융 당국은 신속히 대응책을 마련했다. 우선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SVB와 시그니처은행 예금 중 예금 보호 한도인 인당 25만 달러를 초과하는 부분도 전액 보장하겠다고 발표하며 예금자들을 안심시켰다. 미 연준도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을 통해 은행에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 담보의 액면가를 바탕으로 1년간 대출을 제공하는 유동성 지원 기구를 출범시켜 은행의 유동성 위기 극복을 돕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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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 금융 당국의 조치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교수와 필립 딥비그 교수의 연구 결과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이들이 개발한 다이아몬드-딥비그 모형에 따르면 위기 때는 부실한 은행뿐 아니라 건전한 은행들도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은행의 금융 중개 기능이 마비돼 실물 부문의 침체가 불가피하다. 이들은 뱅크런을 예방하기 위해 예금보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본인의 예금이 안전하게 보장된다면 예금자들이 뱅크런에 동참할 이유는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SVB는 기업 예금을 주로 취급했기 때문에 예금 보호 한도를 초과한 예금이 전체의 90%를 넘는 상황이었다. 예금 전액 보장이 아니었다면 제2·제3의 SVB를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BTFP도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들의 추가적인 뱅크런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미 금융 당국의 SVB 파산 후속 조치는 매우 효과적인 대응으로 판단된다.

SVB 파산 사태 후 국내 금융시장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지속된 침체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부동산 PF에 노출된 정도가 큰 비은행권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고 있다. 국내 비은행권이 보유한 부동산 PF 대출 및 채무보증 규모는 2022년 9월 기준 115조 5000억 원으로 주로 여신전문회사와 저축은행에 집중돼 있다. 부동산 PF 대출의 연체율은 2021년 말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인터넷뱅킹 이용률이 높아 자칫 디지털 뱅크런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 당국은 디지털 뱅크런 등 잠재적 위기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우선 1인당 5000만 원인 예금 보호 한도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예금 보호 한도는 2001년부터 23년째 제자리인데 그동안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약 2.8배 증가했다. 미국·일본·영국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경우 1인당 GDP 격차를 감안해도 한국의 예금 보호 한도는 크게 낮은 편이다. 예금 보호 한도의 상향 조정은 디지털 뱅크런 가능성을 낮추고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기업과 가계의 경우 예금 규모에 큰 차이가 있으므로 기업과 가계에 대한 예금 보호 한도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규제의 실효성을 제고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2010년부터 미 연준의 연간 스트레스테스트와 높은 자본금 규제 대상에 포함된 중소형 은행이 2018년부터 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SVB 및 시그니처은행 파산 사태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일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미 연준의 스트레스테스트에는 지난해와 같은 급격한 금리 인상 시나리오는 포함돼 있지 않으며 자본금 규제에 국채 가격 하락에 따른 미실현 손실은 고려되지 않는다. 즉 미국에서 중소형 은행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지 않았더라도 최근의 위기를 막기는 어려웠다는 뜻이다. 이를 거울 삼아 은행 및 비은행권에 다양한 시나리오의 스트레스테스트를 권고하고 자본금 규제에 자산의 시장가치를 반영하는 등 보다 실효성 있는 건전성 규제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특화은행 도입 추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SVB 파산 이전 국내 금융시장은 은행업의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금융위원회는 대형화된 은행들의 과점 체제가 굳어진 국내 은행 산업 내 경쟁을 확대하기 위해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을 고려했고 SVB는 그 대표적인 예로 거론됐다. 하지만 최근 SVB 파산에서 확인했듯이 특정한 산업이나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특화은행은 해당 산업이나 고객층에 고유한 충격이 발생했을 때 파산 위험에 몰릴 수 있다. 또 규모나 생산성 측면에서 특화은행은 이미 대형화된 기존 은행과의 경쟁에서 열세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특화은행 도입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유혜미 교수는 …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조사국 조사역, 국제통화기금(IMF) 인턴, 미국 뉴욕주립대-버펄로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거시경제 전문가로 한국은행 통화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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