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日·사우디 이어 유럽도 뒤통수…바이든 '중러 전략' 삐걱

■[Global What] 美의 '中·러 디커플링' 흔들

마크롱 "中과 안정적 공급망 희망"

習 "제로섬 게임 승자 없다" 화답

伊 총리도 상반기 방중 검토나서

사우디 美반대에도 원유감산 강행

日도 러산 원유 가격상한제 발빼

각국 경제 실리 앞세워 독자행보

에마뉘엘 마크롱(가운데) 프랑스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중국 광저우 중산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AP연합뉴스에마뉘엘 마크롱(가운데) 프랑스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중국 광저우 중산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을 첨단 기술 패권 경쟁에서, 러시아를 에너지자원 시장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이른바 디커플링(탈동조화) 기조가 우방국들의 실리적 행보에 삐걱대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 또는 미국과 과거에 우호적 관계를 형성했던 국가들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디커플링에서 이탈해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디커플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미국의 오랜 중동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와 함께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을 주도했다. 일본조차 주요 7개국(G7)이 정한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상한제를 지키지 못했다.




◇마크롱 등 유럽 정상 대거 중국행=약 3년 만에 중국을 찾은 마크롱 대통령은 6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프랑스 기업인위원회 제5차 회의 폐막식에서 “디커플링에 반대하며 보다 안정적이고 개방적인 공급망을 만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제로섬게임에는 승자가 없다”며 “디커플링, 망 단절은 중국의 발전 과정을 막을 수 없다”고 맞장구쳤다. 마크롱은 방중 첫날 진행된 교민 간담회에서도 중국 경제로부터 디커플링이 진행 중이며 속도·강도 문제만 남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며 “이 시나리오를 믿지 않고 믿고 싶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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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발언은 미국이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앞세워 중국을 반도체·전기차 등 첨단 전략산업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것과 결이 다르다. 마크롱은 당초 방중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내세웠지만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핵전쟁에 반대한다”고 밝히면서도 러시아를 명시하지 않는 등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다. 테레사 팔론 유럽아시아연구소장은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방문이 무역보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평화 세탁(peacewashing)’과 다름없다”고 꼬집은 바 있다. 마크롱 외에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지난달 시 주석과 만났으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상반기 중국 방문을 검토 중이다. 이들 모두 중국과 무역 등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美 원유 정책과 결이 다른 日·사우디=러시아를 고립시키기 위한 단결이 아시아와 중동에서 흔들린다. 사우디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그외 주요 산유국이 꾸린 ‘OPEC+’가 미국의 반대에도 원유를 하루 116만 배럴 감산하기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OPEC+의 이번 결정을 사전에 통보받은 미국이 시장 불확실성을 고려해 반대 입장을 전달했지만 감산 결의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발표를 주도한 것은 사우디와 러시아”라고 전했다. 실제로 세부적인 감산 규모를 보면 사우디와 러시아가 각각 50만 배럴로 가장 많고 나머지 국가들은 그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사우디는 네옴시티 등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프로젝트를 위해 유가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했고 러시아는 원유 판매 수익이 절실했다.

미국 입장에서 사우디의 이번 결정은 뼈아프다. 사우디가 이미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의 관계를 회복한 데다 독자적으로 시리아와의 관계도 정상화하는 등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체감하는 와중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은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과 양국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 중국 베이징에서 6일 회담까지 열었다. 그간 미국에 밀착해 안보를 유지했던 사우디의 기조가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일본은 1·2월 러시아산 원유 74만 8000배럴을 총 5200만 달러(약 680억 원)에 사들였다. 배럴당 69.5달러꼴로, G7 등이 러시아산 원유 및 유류 제품에 정한 상한선인 배럴당 60달러를 크게 웃돈다. 일본이 러시아 극동 에너지 개발 사업인 ‘사할린-2 프로젝트’에서 구매하는 원유에 대해 9월 말까지 가격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기 때문으로, 사전에 미국의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아시아 동맹국 중 하나인 일본이 가격상한제에서 발을 빼 동맹에 균열을 줬다”며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에 참여하는 서방의 단결이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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