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흥행 부진으로 극장가에 ‘위기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여름 성수기의 시작인 6월 개봉 여부와 작품 선정을 놓고 투자·배급 업계에 피 말리는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5월 극장 개봉이 확정됐거나 유력한 한국영화 ‘범죄도시 3’와 미국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만일 두 작품이 답답한 극장가 상황의 물꼬를 트지 못할 경우 6월 개봉작은 흥행 부진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여름 ‘외계+인’, ‘비상선언' 등 야심차게 내놓은 텐트폴과 올해 초 기대를 모았던 ‘교섭’, ‘유령’ 등이 실패한 탓에 이후 작품까지 고배를 마실 경우 영화 투자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다.
10일 영화업계에 따르면 국내 투자·배급사들이 이미 제작을 마친 작품이 60~70여 편에 달함에도 다음달 이후 개봉 일정을 확정한 영화는 서너 편에 불과한 실정이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뉴)가 배급을 맡은 영화 ‘롱디’가 5월 개봉이 확정됐고,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재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NEW의 해양범죄활극 ‘밀수’가 여름 성수기 개봉으로 가닥을 잡은 정도다.
업계에서는 국내 흥행 보증 수표가 된 ‘범죄도시 3’의 5월 개봉을 점치고 있지만 배급을 맡고 있는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아직 논의 중인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배우 김선호의 첫 영화 ‘더 차일드’의 6월 개봉도 투자·배급을 맡은 NEW 측은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흥행 참패를 경험한 쇼박스·CJ ENM 등은 개봉 시기에 대해 더욱 조심스럽다. 쇼박스는 영화 ‘시민 덕희’·‘피랍’ 등의 개봉 시기를 조율하고 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CJ ENM도 ‘외계+인 2부’ 등 다수의 작품을 펼쳐두고 배급 시기를 고민 중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최근 한국 영화의 잇따른 부진이 꼽힌다. 코로나19 이후 콘텐츠 산업 지형도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우세가 굳어지고 극장 관람료가 오르면서 관객 유인책이 사라진 탓이다. 이제 관객의 마음은 ‘돈과 시간을 들여 극장에 갈 만한 영화만 본다’는 쪽으로 굳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와 ‘범죄도시 3’의 성적표가 투자·배급사들의 의사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두 작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나온 이후에나 투자·배급사들의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고심 끝 나온 6월 성적표가 좋지 않을 때, 7~8월 여름 성수기의 ‘흥행 모멘텀’도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영화계의 침체는 통계로도 산출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2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지난 1~2월 국내 극장 영화의 누적매출액은 1931억 원으로 2019년 같은 기간의 56.6% 수준에 불과했다. 이 중 한국 영화의 부진은 두드러졌다. 성수기인 지난 1월 말 설연휴 개봉한 한국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2월 관객도 저조하게 조사됐다. 올해 2월 한국영화 매출액은 2019년 2월의 9.2% 수준에 불과했다.
수천 억 규모의 시장 매출이 증발하자 영화 투자도 난항을 겪고 있다. 코로나 19 시기 촬영된 대작들에 대한 기존의 투자 제작비가 회수돼야 신규 투자도 이뤄질 수 있어 올해 한국영화 흥행이 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정부도 7월부터 영화관람료 소득공제를 시행하는 등 흥행 지원에 고심 중이다. 김미현 영화진흥위원회 연구본부장은 “한국 영화의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와 영진위도 집중적인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면서도 “영화발전기금이 고갈 위기여서 적극적인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