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재정준칙 처리 내달로 미룬 與野…예타 무력화엔 손발 '착착'

[24년만에 예타 완화]

◆ 포퓰리즘에 멍드는 국가 재정

정치권 표심 욕심에 일사천리 추진

TK 신공항부터 5호선 김포 연장 등

지역 민원해소용 공약 쏟아질 듯

선심성 SOC사업 검증 구멍 뚫려

총선 후 국가재정 악화 우려 커져

재정준칙 법제화 문제 긴급 좌담회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재위 경제재정소위 위원들과 참여연대, 경실련 주최로 열렸다. 신동근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재정준칙 법제화 문제 긴급 좌담회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재위 경제재정소위 위원들과 참여연대, 경실련 주최로 열렸다. 신동근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최고치(49.6%)를 기록했지만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재정준칙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여야는 재정 곳간을 지키기는커녕 되레 자물쇠를 풀려 하고 있다. 불필요한 재정 사업을 걸러내는 예비타당성조사 기준을 완화하는 입법을 어물쩍 처리하려는 것이다. 그간 지역용 퍼주기 사업이나 공약을 저지하는 역할을 해온 예타 제도의 면제 범위가 확대될 경우 선심성 사회간접자본(SOC) 검증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여야는 12일 열리는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예타 대상 사업의 기준 금액을 올리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야가 이른 시일 내에 논의하기로 했던 재정준칙 법제화는 4월 임시국회 안건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은 재정준칙을 먼저 논의한 뒤 예타 기준을 완화하는 법안들을 심사하기로 입장을 정했지만 민생 법안에 대한 처리가 늦어지면서 이견이 없는 법안 순으로 처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야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5월 임시국회에서 합의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예타 대상은 건설 공사 포함 사업, 지능 정보화 사업, 국가 연구개발 사업, 중기 사업 계획서에 의해 재정지출이 500억 원 이상 수반되는 사회복지·보건·교육·노동·문화 및 관광·환경 등 신규 사업 등이다. 개정안 처리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국가 경제와 재정 규모가 성장한 만큼 예타 기준 금액도 두 배인 1000억 원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심사대에 올라온 개정안 중에서는 예타의 정책성 평가를 경제성을 분석하는 것에서 사회적 가치까지 보는 것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처럼 기준이 대폭 완화될 경우 기획재정부의 심사 없이 경제성 없는 사업이 우후죽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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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예타 대상 축소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 지역 개발이나 지역구 숙원 사업을 처리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구 의원들 입장에서는 유권자들의 민원을 외면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특히 수도권보다 개발이 열악한 오지 등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은 경제 타당성을 내세울 경우 예타를 넘어서기 힘든 지역 사업이 허다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예타 기준이 풀릴 경우 열악한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 의원들이 여야 할 것 없이 표심을 사기 위한 선심성 사업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어 함부로 국가재정법의 기준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는 게 재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수도권의 A 의원은 지난해 12월 열린 기재위 소위 회의에서 “사실 예타가 그동안 참 많은 비난을 받았다”면서 “저희 지역은 인구가 50만 명인데 정부 재정이 지원된 사업이 하나도 없다. 인구가 20만, 30만 명 돼도 지하철이 2개·3개씩 지나간다”고 예타 문제를 지적했다. A 의원은 지하철 5호선을 김포까지 연장하고 이를 위한 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수도권의 B 의원도 같은 회의에서 “인구 17만 명의 신도시를 만들면서 서울로 진출입하는 도로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비용 대비 편익 분석(B/C)값이 안 나온다고 예타에서 떨어뜨려 그 돈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부담하는 것으로 하고 그 부담금을 결국 분양가에, 주민들에게 넘겼다”고 덧붙였다. B 의원의 지역구는 청라·검단 신도시를 포함하고 있다. 포퓰리즘 논란이 일고 있는 지방 공항 특별법 등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은 대구·경북(TK) 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을 4월 임시국회에서 동시 처리하기로 잠정 합의했는데 이들 법안에는 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만큼 여야 의원들의 지역 민원 해소용 공약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를 내세우고 있지만 세수 감소와 경기 둔화 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회 역시 촘촘한 재정 운용에 동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TK 통합 신공항이나 광주 군 공항 이전 등 지방 공항 신설을 예시로 들어 “경제정책이 하나의 정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여야 모두 재정적자는 나중 문제이고 눈앞에 다가온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법안을 추진한다. 총선이 끝나면 대선·지방선거 등 선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앞으로의 국가재정 상황이 더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는 이틀 연속 열리는 기재위 소위에서 국가재정법 개정안의 대안을 합의해 통과시키기로 했다. 이번 개정안은 예타 기준을 2024년부터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위 관계자는 “(예타 기준 상향 법안의 경우) 소위에서 앞서 합의된 대안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며 “여야가 이견이 있는 사회적경제법과 재정준칙은 다음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신한나 기자·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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