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 우려 속에 기업 인수합병(M&A) 거래들이 적지 않은 난관을 맞고 있지만 투자은행(IB) 업계의 전문가들이 나서 고난도의 빅딜을 이끌어내 재계와 투자 업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M&A 거래는 매도자와 매수자 간 눈높이 격차가 여전한데 베테랑 IB맨들이 나서 까다로운 조건들을 조율해 돌파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12일 IB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와 UCK파트너스(구 유니슨캐피탈코리아)가 2조 원 이상을 투입해 인수한 오스템임플란트(048260)의 경영권 거래에서 배광수 NH투자증권(005940) 본부장이 해결사 역할을 했다. 오스템임플란트 창업자인 최규옥 회장은 국내외 대형 사모펀드(PEF)의 경영권 인수 제안을 뿌리쳐왔지만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펴는 PEF인 KCGI의 공격을 받자 마음이 바뀌었다. 하지만 최 회장의 낮은 지분율과 자녀 승계 등이 걸림돌이었는데 배 본부장이 전환사채(CB)를 통한 거래 구조와 공개 매수 계획을 조율했다. 그는 특히 인수 측에 NH투자증권이 1조 7000억 원의 인수금융을 지원할 수 있다는 카드도 제시했다.
NH투자증권은 전국 지점망을 동원해 오스템임플란트의 공개 매수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한편 인수금융도 주선해 짭짤한 수수료를 챙겼다. IB 업계 관계자는 “오스템임플란트의 인수 구조는 향후 많은 자문사와 기업이 상장사 인수에 참고할 만한 ‘교과서’라 할 만큼 정교했다”면서 “글로벌 PEF도 탐낸 기업을 국내 PEF들이 인수할 수 있게 된 데는 배 본부장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했다.
IB 업계의 이목은 삼성증권(016360)에도 쏠리고 있다. 올해 M&A 시장의 최대 빅딜로 조건에 따라 6조~10조 원의 인수 가격이 책정될 HMM의 매각 주관사를 삼성증권이 예상을 깨고 따냈기 때문이다. KDB산업은행이 주도한 HMM 매각 주관사 선정 입찰에 유력한 후보였던 크레디트스위스(CS)가 불참하자 일부 외국계 증권사가 60억 원대의 수수료를 써내며 적극성을 보였고 국내 대형 IB 역시 80억~100억 원의 수수료를 제시하며 저가 수주 경쟁을 벌였다.
삼성증권의 경우 산은이 제시한 허용치인 300억 원 가까운 가격을 써냈지만 전체적인 평가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HMM의 매각 예상가가 높고 막대한 CB와 현금 처리 방안까지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자문인 점을 고려한 결과다. 업계에서는 삼성증권이 대기업들과 거래 관계를 꾸준히 쌓아왔고, 특히 골드만삭스 출신의 이재현 IB1부문장(부사장)이 지난해 둥지를 틀면서 인수 후보 기업을 확보하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수주 배경으로 꼽고 있다.
지난달 말 2조 4000억 원의 인수 대금 납입이 완료된 메디트 경영권 거래에서는 딜로이트안진의 재무자문본부 남상욱·조병왕 파트너가 매도자와 매수자 양측에서 활약했다. 남 파트너는 매도자인 UCK파트너스의 회계 자문을 맡았고 조 파트너는 매수자인 MBK파트너스 측 자문을 담당했다. 회계 자문이나 법률 자문은 이해 상충 방지를 위한 방화벽이 잘 구축돼 있으면 한 회사가 매도·매수 양측을 대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20년 이상 재무자문 부문을 탄탄하게 이끌어온 딜로이트안진은 파트너들의 오랜 경험과 팀워크로 기업이나 PEF의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딜로이트안진은 2조 4200억 원의 대형 M&A에서 매수와 매도 측을 모두 대리하며 상반기 리그 테이블에서 상위권을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