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국회 통과가 유력시됐던 '간호법' 제정안이 끝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제405회 국회 제4차 본회의에서 중범죄의사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을 제외한 채 간호법의 표결을 밀어 붙이려 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 추가 논의"를 요구하며 상정이 보류됐다. 다만 여야 간 입장차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13개 보건의료직역 단체가 참여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가 "법안 통과 시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며 맞서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이날 국회 앞에서는 간호법 본회의 상정 불발이 결정될 때까지 법안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진 보건의료직역 단체들의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 관련 내용을 분리해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 인력의 업무 범위와 근무환경, 처우 등을 명시한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등 간호사를 제외한 보건의료직역 단체들은 "간호법이 통과될 경우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간호사가 의사 없이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며 간호단독법 제정을 반대해 왔다. 특히 현행 의료법의 규율 대상이 ‘의료기관’에 한정된 것과 달리, 간호법 제정안에서 '의료기관과 지역사회’라고 언급된 부분을 문제 삼았다. 향후 간호사가 의사의 관리 감독 없이 독자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면서 단독 개원까지도 가능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와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방사선협회 등 다른 의료직역 단체들도 간호법이 제정될 경우 간호사들이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침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반대하고 있다.
보건의료연대는 이날 오후 4시경 국회 정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하면 지난 8일 결의에 따라 400만 회원이 낭떠러지로 향하는 보건복지 의료체계를 지키기 위해 총파업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며 "모든 책임은 악법들을 무리하게 추진한 간호협회와 더불어민주당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싼 보건의료직역간 갈등이 심화하며 의료대란이 우려되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11일 '의료 현안 관련 민당정 간담회'를 열고 간호사 업무 관련 내용은 그대로 의료법에 존치하는 한편 처우에 대한 법안은 따로 입법하는 내용의 중재안을 제시했는데, 간협과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당초 간호법 제정안은 중범죄의사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과 함께 이날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지만 협의 과정 등이 지체되며 오후 4시를 넘기도록 상정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1시 30분으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미루며 추이를 지켜보던 보건의료연대는 4시께 기자회견을 강행하며 민주당을 향해 "정쟁을 멈추고 올바른 결정을 해달라"는 경고메시지를 날렸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간호법 통과가 유력하다고 판단한 듯,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의협회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보건의료연대는 국민들에게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 폐기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오는 16일 서울시청 앞 대규모 총궐기대회를 준비 중이다. 앞서 지난 8일 열린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공동 총파업 결의를 위한 확대 임원 연석회의'에서는 보건의료연대 소속 각 단체장들은 법안 통과 시 단식 돌입을 선언하고, 구체적인 파업 시기와 방법을 논의하자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보건복지의료연대에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 등 13개 단체가 참여 중이다. 최악의 경우 2020년 8월 의사 파업 이후 약 3년만에 범의료계 총파업이 열릴 수도 있다.
의협은 지난 7일부터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총파업에 돌입할지 여부를 묻는 투표에 돌입한 상태다. 오는 19일까지 이어지는 투표 결과에 따라 총파업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은 27일 본회의에 다시 상정될 예정이다. 다만 의협 등 보건의료연대의 반발이 심해 또다시 본회의 상정이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의협은 간호법, 의료인면허취소법 국회 통과가 임박한 데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건복지부와 예정됐던 제7차 의료현안협의체 논의에 불참하기도 했다. 의료현안협의체는 의대증원,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등을 논의하는 자리다. 의협은 지난 2월에도 이들 법안의 국회 본회의 직회부에 반발해 회의에 불참한 바 있다. 간호법을 둘러싼 보건의료계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간호법 지지 의사를 굽하지 않으면서 정쟁으로까지 비화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