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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리포트] 그와 그녀의 분노일지 ‘성난 사람들’

올곧게 살려고 노력해온 대니 조(스티븐 연 분)가 도로 위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난폭 운전을 하면서 ‘비프’는 시작된다. 사진 제공=Andrew Cooper/Netflix올곧게 살려고 노력해온 대니 조(스티븐 연 분)가 도로 위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난폭 운전을 하면서 ‘비프’는 시작된다. 사진 제공=Andrew Cooper/Netflix





운전자는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도로 위에서 치밀어 오른 분노에 난폭 운전을 하고 싶은 충동. ‘로드레이지’를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10부작 ‘비프’(BEEF·성난 사람들)은 보복 운전자와 유발자 사이에 감도는 롤러코스터급 긴장감이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 운수 사나운 나날을 보내는 도급업자 대니 조를 연기한 스티븐 연과 그의 분노 게이지를 최대치로 상승시킨 에이미 라우역의 앨리 웡, 크리에이터이자 제작 총괄을 맡은 이성진 작가가 지난달 29일 화상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개인적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성진 작가는 “어느 날 도로에서 신호가 바뀌었는데 머뭇거린 적이 있다. 흰색 BMW X3가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렸고 내 차 옆에 바짝 따라붙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충동적으로 그 차 뒤를 쫓았다. 정신없이 따라갔는데 차를 세우고 보니 집 앞이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로드레이지 사건으로 인해 내면의 어두운 분노를 자극하는 갈등 촉발의 블랙 코미디는 이렇게 탄생했다.

아이작 조를 연기한 데이빗 최(오른쪽)는 페이스북 본사에 벽화를 그려주고 주식을 받아 돈방석에 앉았던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사진 제공=Andrew Cooper/Netflix아이작 조를 연기한 데이빗 최(오른쪽)는 페이스북 본사에 벽화를 그려주고 주식을 받아 돈방석에 앉았던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사진 제공=Andrew Cooper/Netflix



2017년 이성진 작가와 파일럿을 함께 했던 친구 스티븐 연이 의기투합하며 시리즈가 됐다. 스티븐 연은 “서니(이성진 작가)와 잡담을 나누다가 어느 날 로드레이지에 휘말리는 두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이거다’라는 감이 왔다”며 “보복, 복수, 파괴보다는 ‘너는 나이고 나는 너,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라는 스파이더맨 밈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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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는 우연히 휘말린 로드레이지 사건으로 불화를 반복하는 남녀 주인공을 통해 현대인들의 분노와 불안, 다양한 사회문제를 풍자하며 웃음과 재미를 선사한다. 에이미역을 맡은 앨리 웡은 “인생 여정 속 분노를 표출하는 대사와 상황들이 너무 재미있다. 스릴러적 요소와 서스펜스도 느껴졌다”며 “에이미는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업가이자 아내, 아이의 엄마다. 하지만 그녀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성진 작가는 “원래 이 역할은 백인 남자 설정이었는데 앨리랑 다른 작품 건으로 통화를 하다가 ‘앨리가 하면 코믹함과 분노의 쾌감을 높이겠다’ 싶어 여자 주인공으로 스토리를 바꿨다”고 첨삭했다.

로드레이지 사건으로 적대감을 키운 에이미(앨리 웡 분)와 대니(스티븐 연 분)는 만나기만 하면 사투가 벌어진다. 사진제공=Andrew Cooper/Netflix로드레이지 사건으로 적대감을 키운 에이미(앨리 웡 분)와 대니(스티븐 연 분)는 만나기만 하면 사투가 벌어진다. 사진제공=Andrew Cooper/Netflix


주인공 대니는 미국에서 자란 한국인 가정에서 흔히 보는 효심 가득한 장남이다. 누구에게나 ‘나이스 가이’ 소리를 들어야 하는 중압감을 지녔고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늘 최선을 다한다. 스티븐 연은 “처음부터 공감을 느낀 캐릭터다. 착하게 살려는 그에게 세상은 그를 무너뜨리려고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민자들에게 생존은 절실해서 가족의 역학 구도가 형성되는데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할 역할로 전락하며 감정적으로 버려질 때가 있다. 대니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리면서도 부모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한인 가정의 전형적인 장남”이라고 소개했다. 스티븐 연은 교회 찬양팀 인도자로 등장해 기타를 메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실제 목소리로 부르며 7번째 에피소드를 연다.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 다시 교회에 출석한 첫날 폭풍 눈물로 회개하는 장면(103)과 오버랩되며 평안을 되찾았나 싶다. 하지만 내적 분노가 그리 쉽게 해소될 리 없다. 우발적인 로드레이지로 산 속에 버려진 두 사람이 진솔한 대화로 해방감을 찾기까지 스티븐 연의 연기는 올해 에미상 수상감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비프’(www.netflix.com/Beef)는 히카리, 제이크 슈레이어 등 3명이 에피소드 연출을 맡았고 이성진 작가가 마지막 에피소드(110)의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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